사설
현대차와 기아차가 중소 납품업체들의 부품 가격을 부당하게 깎고 대금을 늦게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과 지연이자 등 63억원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공정위가 매년 거듭되는 대기업의 일괄적인 납품단가 인하 관행에 처음으로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 정도 제재만으로 오랫동안 고착돼온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관행이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시늉만 하는 솜방망이 제재에 그치지 않고 대-중소 기업의 부당한 거래를 뿌리뽑는 확실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조사 결과 드러난 현대·기아차의 횡포는 예상하던 대로였다. 현대차는 부품의 종류나 납품업체의 상황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납품단가 인하를 통보했다. 연초 원가절감 액수를 정한 뒤 몇 퍼센트의 단가 인하가 필요한지를 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이다. 기아차는 리오·옵티마 부품값을 낮추는 대신 쏘렌토·카니발의 부품값을 인상해 주기로 약속하고 일방적으로 이를 파기해 버렸다. 그러나 납품업체들은 한마디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다.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이 77.8%에 이르는 상황에서 문 닫을 각오를 하지 않고 누가 입바른 소리를 하겠는가.
현대·기아차가 스스로 원가절감 노력을 하지 않고 납품업체에 손실을 떠넘기는 것은 기업과 국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현대·기아차는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와 경쟁해야 할 처지에 있다. 이 과정에서 부품업체들의 기술과 경쟁력이 결정적인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납품업체를 쥐어짜는 방법으로 언제까지 국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동차 산업은 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중추산업이자 미래 성장산업이기도 하다. 1차 협력업체만 900여개에 이르고 2~3차까지 합하면 수천개에 이른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관행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한다.
이번에 드러난 납품단가 부당인하는 사실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현대·기아차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납품업체들을 쥐어짜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러려면 과징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실질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걸리더라도 과징금 몇십억원 내는 것으로 그친다면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병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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