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무산됐다. 이제 대통령의 임명 절차만 남았다. 국회 인사청문회법을 보면, 청문회가 열리지 않더라도 대통령은 청문 요청일로부터 20일 지난 뒤엔 공직 후보자를 그 직위에 임명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온갖 의혹과 자질 시비로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임명을 강행한 전례가 있다. 지금 청와대 분위기로는 김성호 후보자 역시 23일께 정식 임명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가 정보기관을 책임지게 될 사람이 중대한 의혹에 휩싸였는데도, 이에 대한 어떤 조사나 청문 절차 없이 그대로 임명하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김 후보자는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았다고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가 지목했던 인물이다. 김 변호사 자신이 직접 김 후보자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 후보자는 이 사실을 강하게 부인해, 아직 어느 게 진실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고위 공직 후보자가 특정 대기업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 제기는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지금까지 김 변호사의 삼성 관련 폭로 내용들이 신뢰할 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국정원장 임명장을 주는 일보다, 국회 청문회나 특검 수사를 통해 의혹의 진위를 먼저 밝히는 게 순서다.
이런 점에서 국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열지도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 국회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청문회 무산 책임을 놓고 여야 공방이 있긴 하지만, 여야 모두 총선 공천에만 신경 쓰느라 청문회를 여는 데는 별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양쪽 다 청문회 무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무리 선거를 앞둔 시기라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본연의 업무를 태만하면서 선거에선 뭘 내걸고 표를 달라고 할지 궁금할 뿐이다.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절차상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대통령이 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건 옳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국정원 조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를 모를 바 아니나, 더 중요한 건 의혹의 실체와 국민의 평가다. 적어도 ‘삼성 떡값’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까지는 기다려 보고, 그 결과에 따라 김 후보자의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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