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가 열린 그제, 서울시내는 종일 어수선했다. 성화 봉송길을 따라 수천명의 중국인 환영 시위대와 티베트 인권을 외치는 저지 시위대 사이에 여러 차례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소규모의 저지 시위대를 향해 그보다 훨씬 많은 중국인 시위대가 공격을 하는 양상이었으니,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 우리 정부도 중국 쪽에 강한 유감을 밝혔다.
충돌 과정을 보면, 일부 중국인 시위대가 과잉 행동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는 상대 시위대 쪽에다 돌과 물병 따위를 던져 사람을 다치게 했고, 수백명이 몇 사람을 호텔 안까지 쫓아가 집단 구타를 할 듯 소란을 피웠으니 ‘난동’이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수도 한복판에서 공공연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본 시민들도 모욕을 받은 느낌이었으리라.
중국인 시위대의 이런 행동은 스스로 중국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중국인 시위대는 국기인 오성홍기를 치켜들거나 휘감은 채 민족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구호와 펼침막을 앞세워 시위를 벌였다. 그러면서 티베트 무력진압에 항의하는 한국인 등의 시위대를 공격했으니, 중국의 민족주의가 도를 넘어 폭력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도 남았다. 그렇게 자신과 다른 주장을 공격하고 말살해야 할 것으로만 여긴다면 편협한 집단주의일 뿐이다.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 과시하려는 성숙한 민주사회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이런 일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성화 봉송에 앞서 국내의 중국인 유학생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시위를 준비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찰이 미리 대비하지 못한 채 허둥댄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성화 봉송 저지 시위대는 집회 신고와 거리행진 신고를 모두 받은 반면, 중국인 시위대는 일체의 집회 신고가 없었다고 한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이 정당한 집회와 시위를 보호하자는 것인 만큼, 경찰은 합법 집회 보호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번 사태가 두 나라의 불필요한 감정 대립으로 이어져선 안 될 것이다. 집단적 분노가 확산되는 일도 막아야 한다. 그러자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도록 이번 사태에 대한 경찰의 처리부터 엄정한 법원칙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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