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해 한-미 쇠고기 협상을 앞두고 전문가와 검역 당국자들이 검토한 세 건의 자료를 공개했다. 정부에서 입수했다는 이 자료는 최근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정부가 내놓는 안전 주장이 얼마나 가증스런 거짓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 한국인의 유전자가 인간 광우병 감수성이 높다는 내용 등을 담은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비과학적인 선정 보도로 매도한 일부 보수언론의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도 확인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개정협의 대비를 위한 2·3차 전문가 회의와 가축방역협의회 회의 결과를 보면, 지난해 10월11일 마지막 협상 전까지 우리 정부의 방침은 과학적 근거에 비춰 뼈는 허용하더라도 30개월 미만을 고수하며, 소 나이에 관계없이 일곱 가지 특정 위험물질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이 특정 위험물질의 제거는 “광우병의 잠복기가 길고 한국민의 인간 광우병 감수성이 높은 유전적 특성을 고려해” 소비자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 정부도 한국민의 유전적 특성에 따른 위험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검역기준을 완화해야 할 어떤 새로운 근거도 없이 참여정부가 정한 기준에서 훨씬 벗어나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포기하는 수준의 합의를 미국 쪽에 선사했다. 이와 관련해 쇠고기 협상 책임자인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이 “협상을 더 해야 할 것이 있는데, 18일에 협상을 마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전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현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선물로 검역주권을 포기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의혹이 꼬리를 물고 국민의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스스로 근거로 삼았던 과학적 연구결과를 비과학적인 선동으로 몰아붙이고 참여정부의 뒷설거지를 했을 뿐이라고 강변하는 후안무치를 연출하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미국과 합의한 내용의 문제 부분을 은폐하고 왜곡해 국민을 호도하려고 잔꾀를 부리고 있는 점이다.
이래 가지고서는 어떻게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정부는 검역문제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굴욕적 합의를 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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