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결국 대학들이 마각을 드러냈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3불 정책’(고교등급제·본고사·기여입학제 금지) 재검토를 주창한 데 이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그 폐지를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박종렬 대교협 사무총장은 어제 “기여입학제 도입은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하지만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실시 문제는 대학 자율로 둬도 사회가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누가 혼란이 없으리라고 합의할 수 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3불 정책이 교육의 기회 균등과 입시과열 해소에 일정한 기여를 해온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부 명문대를 중심으로 3불 정책을 무력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지속되었음에도 명맥을 유지한 것은 그 점을 평가하는 여론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쟁과 효율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권 아래서 대학들은 자율이란 명분을 내걸고 이 제도를 뿌리째 뽑아버릴 요량이다.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대교협 등은 학교선택제가 실시되는 2012년 이후 자연스레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등급제는 자기 능력과 관계없는 선배들의 대입성적의 영향을 받는 해괴한 제도다. 대학들은 학교선택제로 고등학교들이 특성화할 것이란 주장을 내세우지만 눈가리고 아웅이다. 대학이 본고사를 되살린다면 고등학교는 입시를 기준으로 서열화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도 더 끔찍한 사교육 광풍이 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 대학, 그 가운데서도 이른바 명문이라는 대학들이 초·중등 교육이 어떻게 되든 자기 잇속만 챙기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데서 비롯됐다. 올해만 해도 고려대 등 일부 사립대학들이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금지를 위반했다. 특목고 출신을 내신과 관계없이 우대하고 미리 공개한 전형요강까지 어기며 본고사형 논술을 출제해 수험생들의 신뢰를 저버렸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3불 정책을 폐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명문대학은 우리 대학들처럼 단지 성적이 조금 나은 학생을 뽑기 위해서 모든 관계의 기초인 신뢰를 내팽개쳐 버리지 않는다. 본고사는커녕 수능 격인 에스에이티(SAT)조차 사회경제적 차이를 반영한다고 해서 무시하려는 추세다. 우리 대학도 이제는 한국 교육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행동해야 한다. 3불 정책 폐지는 그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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