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 수정을 위한 정부·여당의 움직임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던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고위 관계자들이 작심이나 한 듯 원안 변경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물론 이를 위한 각종 꼼수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은 지난 8일 제주도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무엇이 충청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되는지 헤아려 충청도민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당국자로선 처음으로 공개리에 수정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다음날엔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이 “(세종시가) 원안대로 가면 건설사들이 안 들어가 아파트 분양도 안 되기 때문에 자족기능 강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며 원안보다 3배 이상 좋은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제는 장광근 사무총장이 여당 고위 당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구체적인 변경 방법까지 제시했다. 법안을 손대지 않더라도 장관의 고시 변경을 통해 내용을 변경할 수 있다며, ‘농업용’에서 ‘복합용도’로 성격을 바꾼 새만금 사업의 예를 든 것이다. 야당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는 법률 개정이 아니라, 고시 변경이라는 ‘꼼수’로 원안을 정부 멋대로 수정하겠다는 얘기다.
현실이 바뀌면 법률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행정복합도시건설특별법과 관련한 상황은 바뀐 게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도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대선을 비롯한 수차례의 선거에서 이행을 약속한 바 있다. 원안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법을 고치겠다고 한다면 그 사유를 제시하고 야당과 지역 주민을 설득해야 한다. 정부·여당이 주장하는 세종시 수정의 가장 큰 이유는 고작 ‘자족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세종시 원안을 유지한 채 자족기능만 보완하면 될 일이다.
정부·여당의 문제는 겉으로는 보완을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세종시 자체를 형해화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수도권에 사는 일부 땅부자들의 이해를 지켜주기 위한 술수가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더구나, 절차마저 법률 개정이란 정도를 피해 고시 변경이라는 편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스스로 정당성이 없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석연 법제처장도 도시의 성격 변경을 하려면 법 개정이 필수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꼼수가 아니라 정도를 걸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