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새해 국정연설을 통해 경제 살리기와 교육개혁, 지역 발전 등 현안과 과제를 두루 언급했다. 새로운 의제는 눈에 띄지 않았다. 기왕에 펼쳐놓은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일을 새롭게 벌이기보다는 기존 과제를 챙겨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아쉬운 것은 대통령의 국정상황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대한민국은 지금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며 “성숙한 세계국가의 꿈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기존의 국정운영의 기조와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을 비판할 때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는 독선과 아집, 소통 부재 등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갈등과 대립, 충돌과 파행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대통령의 이런 국정운영 탓이 크다. 여당이 예산안 및 노동법을 강행처리하면서 여야 사이의 골은 한층 깊어졌다. 며칠 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발표가 있고 나면 정치·사회적 갈등의 파고는 더욱 높아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새해 새출발을 위해서라도 이런 점들에 대한 성찰과 유감을 표시할 법도 하지만 그런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 대통령의 연설에서 진정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다.
개별 국정과제에서도 의아스러운 대목이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은 사교육에 의존하는 입시제도 혁파 등 교육개혁을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외국어고 입시제도 개선안이 이미 ‘태산명동에 서일필’로 그친 바 있듯이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는 이미 빛이 바랠 대로 바랬다. 이 대통령은 각 지역의 특성화 발전전략 지원 등 지역 발전도 강조했다. 그러나 전임 정부에서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으뜸 전략으로 추진했던 세종시의 뼈대가 흔들리고 있는 마당에 그의 발언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남과 북 사이에 상시적인 대화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새해연설을 통해 “북한은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구태를 벗고” 등의 표현을 동원해 북한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던 것에 비하면 많이 유연해진 자세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가 결정적 전환점에 이를 수도 있는 올해 상황을 고려하면, 이 대통령의 제안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기대에 못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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