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그제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혁신도시와 산업단지에도 (토지를) 원형지로 기업에 공급하는 게 원칙에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후속 조처로 혁신도시에 원형지 공급, 조세감면, 산업용지 분양가 인하 등 보완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보완책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방침이 충분한 검토 없이 지역 민심을 달래기 위한 선심성 정책으로 남발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원형지 개발 자체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공공 목적으로 땅을 수용해놓고 몇몇 기업에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저가에 원형지 개발을 허용한다는 것부터 토지수용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 이런 마당에 혁신도시와 산업단지에도 원형지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지역 개발의 기본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인 인기영합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역마다 모두 원형지 개발을 허용해달라고 한다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게다가 몇몇 혁신도시는 이미 개발계획이 수립돼 공사에 들어간 상태다. 따라서 원형지 개발을 허용한다면 개발계획부터 다시 짜야 한다. 또 혁신도시와 산업단지는 원형지 공급의 조건인 50만㎡ 이상 개발 토지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을 세종시 수정안 관철을 위해 급조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땅값도 마찬가지다. 세종시 산업용지를 3.3㎡당 36만~40만원에 분양하겠다는 것부터 재원 마련 대책이 없다. 상업용지를 비싸게 분양해 재원을 확보하겠다지만 별로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수도권 새도시 개발 때 상업용지를 비싸게 매각해 재원을 조달해왔지만 상가 공급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10개나 되는 혁신도시 땅값을 세종시 수정안에 맞춰 내리겠다면 세종시보다 훨씬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세종시 문제도 해결책이 없는 상태에서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조달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원형지 개발 등의 특혜를 세종시 이외 지역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기존의 개발 원칙을 무너뜨리고 국가 재정을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전국을 투기장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대통령이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선심성 정책으로 전국토를 헤집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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