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육해공군 합동훈련을 참관한 사실이 1990년대 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처음으로 어제 북쪽 언론에 공개됐다. 지난 15일 국방위 대변인 이름으로 ‘거족적인 대남 보복성전’을 주장하는 성명을 낸 데 이은 강경 움직임이다.
북쪽 의도가 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일단 국방위 성명이 남쪽 일부 언론에 공개된 ‘대북 급변사태 계획’을 문제삼은 점으로 볼 때, 그동안 강경 대북정책을 펴온 우리 정부에 경고하려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실제로 급변사태 계획 보도를 잘못 받아들일 경우 남쪽 정부가 북쪽 체제의 붕괴를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렇더라도 지금의 북쪽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해온 이제까지 움직임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북쪽이 자신의 전술적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라면 그릇된 선택이다.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 역시 문제다. 정부는 급변사태 계획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라고만 할 뿐 북쪽의 우려를 불식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다’ ‘좀더 지켜보자’는 반응을 보인다. 사태가 더 나빠질 수 있는데도 그대로 방치하는 모습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그다지 바라지 않는 듯한 태도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북한 정권 붕괴와 남쪽 주도 흡수통일에 대비한 방송 기획물 제작·송출 계획에 수십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북쪽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흡수통일 선전전’의 시작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비상시에 대처하기 위한 급변사태 계획과는 차원이 다른 대북 공세다. 북쪽 처지에서는 남쪽 정부가 대북정책의 초점을 북쪽 체제 붕괴에 맞추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가 이런 의심에서 벗어나려면 방송 기획물 계획 자체를 모두 폐기해야 마땅하다.
분단이 우리 민족의 삶을 구석구석까지 규정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남북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정부 태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의 불확실한 상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기존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늦기 전에 안정적인 남북관계 구축에 나서기 바란다. 돌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대북 통로를 당장 마련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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