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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헌재 결정 취지 외면한 여당의 집시법 개정안

등록 2010-02-16 22:32

한나라당이 밤 10시부터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어제 국회 관련 상임위에 상정해, 처리에 나섰다. 현행 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9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후속조처라지만, 개정안이 헌재의 결정 취지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 개정안은 무엇보다 집회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제21조 제2항)에 어긋난다. 지난해 결정 당시 헌재 재판관 5인의 다수의견은 이 조항을 “집회의 내용을 기준으로 한 허가뿐만 아니라 집회의 시간·장소를 기준으로 한 허가도 금지된다는 의미”라고 판시했다. 해가 진 뒤의 옥외집회를 모두 허용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처럼, 야간집회 허용시간을 한정하는 법규 역시 헌법 정신에 그리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헌법에서 집회 허가제 금지를 명문으로 규정하고서도 따로 법률로 집회 금지시간을 정하는 것부터가 어색하다.

더구나 한나라당 개정안은 현행 집시법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현행법에서도 질서유지인을 둘 경우 야간집회가 허용될 여지는 그나마 있었지만, 개정안대로라면 밤 10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열리는 모든 집회는 예외 없이 금지된다. 경찰의 자의적 법집행은 더 심해질 것이다. 국민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예전보다 더 제한하겠다는 것이니, 헌재 결정의 뜻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그런 점에서 헌재 결정 뒤의 집시법 개정 논의가 야간집회 허용시간대를 어떻게 정할 것이냐는 데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법률로 시간대를 미리 정하기보다는, 집회의 자유를 좀 더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 경찰이 사실상 집회를 허가하는 월권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준사법적이고 독립된 위원회가 집회 관련 주요 결정을 맡거나, 주택가에서의 야간집회에 대해선 다른 규정을 두는 등의 방식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와 집회의 자유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자신의 개정안 처리를 고집할 게 아니라 이런 사회적 합의 과정을 성실히 거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헌재가 개정시한을 6월로 정했으니 바람직한 방안을 논의할 시간이 모자라지도 않는다. 멋대로 2월 안에 졸속 처리하겠다고 서두르다가는 또다른 위헌 논란과 반발이 빚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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