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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일본, 공립 보육원 민영화 논란

등록 2005-01-03 17:43수정 2005-01-03 17:43

 구립 보육원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도쿄도 고토구의 한 구립 보육원에서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가을 운동회를 하고 있다.
구립 보육원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도쿄도 고토구의 한 구립 보육원에서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가을 운동회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마지막 날 일본 도쿄도 고토구 도요슈 보육원.

오후 6시부터 열린 이 보육원 민영화에 관한 학부모 설명회는 밤이 깊어가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6시까지 12시간 동안 마라톤 공방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민영화 방침을 굳힌 구청과 반대하는 학부모는 평행선을 그었을 뿐이다. 준비부족을 우려해 시행 시기를 1년 연기한 구청은 3번째 열린 이번 설명회에서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자 보육원 운영을 맡을 민간업체를 모집하는 등 민영화 강행에 나섰다. 보육원 학부모회 한 임원은 “보육의 질 유지 방안과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대책 등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설명했어야 했다”며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예산절감”-“교육질 저하” 입씨름

최근 도쿄도의 구청들을 필두로 각 지역에서 공립 보육원의 민영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러나 민영화에 따른 질 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들의 공립유지 의견이 여전히 강해 곳곳에서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실태와 배경=도쿄도의 구청들이 보육원 민영화에 가장 적극적이다. 지자체에서 보육시설을 그대로 관리하면서 운영만 민간에게 위탁하는 공설민영 방식과, 지자체가 토지와 건물까지 민간에 넘기는 완전 민영화 방식이 있다. 2003년 8곳에서 2배 이상 급속히 늘어나는 추세다.

아타치구는 전체 60곳의 구립 보육원 가운데 20곳을 올해부터 10년에 걸쳐 완전히 민영화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현재 2.5대 1인 공립과 사립의 비율을 1대 1로 만든다는 방침이다. 오타구는 2009년까지 60곳 가운데 9곳을 공설민영, 2곳을 완전 민영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신주쿠·세타가야·나카노 등 다른 구들도 비슷한 계획을 갖고 있다.

지자체들은 민영화의 이유로 행정개혁, 대기 아동 해소, 다양한 보육수요의 충족 등을 내세운다. 고토구는 도요슈 보육원의 운영을 민간에 맡겼을 때 인건비 등 연간 7천만엔의 경비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한다. 삭감되는 비용으로 다른 보육 서비스를 확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보육원 20곳의 완전 민영화로 연간 10억엔 이상의 경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아타치구는 남은 돈을 재택보육 지원으로 돌릴 계획이다. 가용재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구청들 적자구조 해소
민간 개방으로
다양한 보육수요 충족도

현재 정해진 시간 이상의 연장 보육이나 휴일 보육 등을 희망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공립 보육원의 보육사는 지방직 공무원이어서 근무체제를 바꾸거나 유연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갈수록 늘어나는 대기 아동들을 받아들이려면 대폭적인 민간 개방을 통해 보육원의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들 구청이 민영화를 서두르는 이유는 예산 절감의 필요성이다. 올해부터 중앙정부와 도에서 지원되던 보육원 운영비 부담금이 폐지돼 일반 재원에 통합됐다.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로선 보육원 운영 지원으로 용도가 정해져 그동안 손을 대지 못했던 예산에도 ‘칼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육원 민영화로 남긴 돈이 전혀 무관한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 또한 높아진 셈이다. 앞으로 보육원 운영비뿐 아니라 시설정비나 서비스 확충 등에 주어지던 보조금도 재검토될 것으로 예상돼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잇따르는 진통=고토구가 도요슈 보육원 민영화를 1년 늦춘 것은 학부모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구청 보육과 관계자는 “학부모의 이해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며 “이번 일을 교훈삼아 대상 보육원을 결정한 다음해 봄부터 바로 민영화한다는 무리한 일정은 재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구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네리마구는 지난해 8월 기존에 있던 구립 보육원 3곳의 운영을 민간에 맡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민영화 연기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올 4월 민영화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한 보육원에선 양쪽이 지난달 협의기관을 설치한다는 데만 겨우 합의했을 뿐 준비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내년부터 해마다 한 곳씩 민영화해나갈 예정인 세타가야구에서도 학부모들은 공립이어서 애를 맡겼는데 이용자의 동의도 없이 사업자들 바꾸는 것은 계약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영리주의 운영 불보듯”
학부모님들 반발
서명운동·청원서 제출

심각한 부작용을 낳은 ‘실패 사례’도 발생했다. 오타구 구립 보육원 2곳에선 진통 끝에 학부모들이 운영업체 선정의 기준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것으로 타협이 이뤄져 지난해 봄 예정대로 민간업체에 운영권이 넘어갔다. 그러나 한 보육원에서 지난 10월까지 모두 19명의 보육사가 그만두는 사태가 빚어졌고, 이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의 절반 정도가 11월 운영업체 교체를 구청에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행동에 나선 학부모=민영화가 거론되는 대부분의 구에서 학부모들의 반대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으며, 후생노동성·도쿄도·의회를 대상으로 한 청원서 제출도 한창이다. 기자의 아이가 다니는 보육원도 마찬가지다. 이들 학부모는 영리위주로 보육원을 운영할 게 분명한 민간업체는 인건비가 많이 드는 경험많고 노련한 보육사들을 쓰지 않는 등의 방식으로 이윤창출에 나설 우려가 크며, 거꾸로 운영난으로 문을 닫는 보육원이 나온다면 아이와 학부모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출산율이 갈수록 바닥을 치고 있는 일본에서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은 마당에 민영화를 한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이들은 말한다. 전국보육원단체연락회는 보육원 운영비의 일반재원 통합, 비용절감을 위한 유치원과 보육원의 일원화, 보육원의 조리실 설치 규제완화 등 공적 보육을 후퇴시키는 시책이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락회는 “어린이 교육을 경제효율의 관점에서만 보고 공립 보육원의 폐지와 민영화를 추진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포기”라며 “지금이야말로 보육시책의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사진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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