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자백을 받아내려 여러 피의자를 고문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휴지나 수건으로 피의자의 입에 재갈을 물린 채 머리를 밟아대고, 수갑을 채운 양팔을 머리 쪽으로 꺾어올리는 ‘날개꺾기’ 따위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고통을 줬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졌던 경찰의 고문수사가 꼭 이랬다. 십수년 전에 이미 사라졌을 것으로 믿었던 야만적인 수사 행태가 아직 남아 있다니 놀랍고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고문수사를 한 것으로 지목된 서울 양천경찰서는 인권위의 이런 발표를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부터 올해 3월 말 사이에 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기소된 피의자 32명을 인권위가 직접 조사했더니 그중 22명이 비슷한 식의 고문을 받았다고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한다. 구치소와 병원진료 기록 등 관련 증거가 한둘이 아니고, 지금까지 고문 후유증을 겪는 이들도 있다. 고문 끝에 억지로 여죄를 자백했다가 검찰 조사에서 없던 일로 된 경우도 있다니, 고문수사가 없었다는 경찰 주장은 도저히 믿기 어렵다. 경찰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도 턱없는 억지를 내세워 명백한 고문 사실을 부인한 바 있다.
이런 일이 어디 양천서 한 곳에서만 있었겠느냐는 의심도 나올 수밖에 없다. 인권위 발표를 보면, 경찰은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사무실 안 폐쇄회로텔레비전의 사각지대나 차 안에서 피의자들을 고문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피의자 인권보호를 위한 각종 장치나 제도도 별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수사 성과를 쉽게 올리려는 유혹에서 엄연히 불법인 그런 가혹행위를 저질렀다면, 다른 경찰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수 있다. 이번 일의 진상을 명백히 규명해 관련 경찰관들을 엄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권이 중시되는 사회에선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벌어지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인권 침해를 걱정하는 국제기구 등의 거듭된 지적도 모른체했다. 되레 무차별 불심검문을 부활하려 했다. 정부가 인권 보호에 앞장서기는커녕 스스로 인권 퇴행을 앞장서 부추긴 셈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선 경찰까지 고문수사 따위의 유혹에 쉽게 빠졌을 것이다. 경찰 못지않게 정부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