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의 소비자물가가 일년 전보다 3.6%나 올랐다. 식탁에 매일 올라오는 신선채소는 84.5%가 치솟았다. 상추나 호박, 열무 등은 무려 200% 넘게 폭등했다. 가히 살인적인 상승률이다. 계속된 저금리 기조로 시중자금이 풍부하게 풀려 있어 자칫 만성적인 물가불안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채소값만 내려가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안이한 전망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번 물가폭등은 폭염과 폭우 등 기상악화로 인한 채소류 작황 부진 탓이 크긴 하다.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최근 들어 이상기후가 일상화하고 있다. 이제는 기상이변을 몇 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어쩔 수 없는 변수로 치부해선 안 된다. 언제라도 이상기후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채소류 수급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재배방식 다양화나 유통과정 혁신 등을 통해 채소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면서 안정된 가격으로 채소류를 공급하고 있는 한살림·초록마을·생협 등이 하나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어제 정부가 부랴부랴 채소값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중국산 배추 100t과 무 50t을 무관세로 수입하고, 월동배추의 출하시기를 앞당기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대응 시기가 너무 늦은데다 수입량도 많지 않아 큰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 통계청의 발표를 보면, 추석연휴 집중호우 이전에 이미 채소류값이 폭등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사전에 안정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이번 대책에서도 월동배추의 출하시기를 앞당기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부족한 김장배추는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뾰족한 대책은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상황만 피하고 보자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대책들뿐이다.
중국산 채소가 들어오고, 배추나 무의 출하량이 늘어나면 물가는 어느 정도 내려가긴 할 것이다. 하지만 채소류의 구조적인 수급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물가하락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도 3%대의 물가상승률이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터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 수준으로 동결하고 있는 등 경기확장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곳곳에 물가상승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물가안정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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