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책 한 권을 보내줘 틈틈이 읽고 있다. 동양 고전의 진수를 가려뽑아 해설한 <고전에서 발견한 삶의 지혜>(이택용 지음)란 책인데, 거기에 전한 때 역사가 사마천의 이런 독백이 들어 있다.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이 금지하는 일만을 범하면서도 일평생을 호강하고 즐겁게 살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이런 사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이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이 통탄한 인간 세상의 불합리에 대해 지은이는 이런 ‘분석’을 내리고 있다. 첫째, 하늘이 하는 큰 일은 반드시 원인과 결과가 부합하나 작은 일에서는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둘째, 길흉화복의 인과가 당장에는 부합하지 않더라도, 긴 시간에서 보면 하늘의 이치에 닿는다. 세번째는 하늘의 이치가 너무 오묘하여 인간의 인식으론 알기 어려운 인과관계가 설정돼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인간의 모든 부도덕한 행위의 안식처가 되주기도 하는 것이니, 실로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과연 당대의 인간이 납득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인과론을 어떤 섭리의 예비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지난 5년 동안 서울 강남지역에서 값이 급등한 아파트를 조사해보니, 아파트를 산 열 사람 중 여섯이 집을 세 채(3주택) 이상 보유한 이들이라는 국세청의 투기사례 발표는 서민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그 투기 행각 속에 아파트값은 평균 3억7천만원대에서 무려 10억6천만원대로 2.82배나 치솟았다. 사마천이 살아온다면 투기자본이 휩쓸고 다니며 분탕질하는 이런 불합리를 어떻게 하늘에게 물었을까?
민주화 운동으로 수차례에 걸쳐 옥살이를 치른 한 후배가 있다. 그는 요즘 “독립운동하면 3대가 고생하더라는 말을 실감한다”며 돈을 벌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50대까지 열심히 돈을 모은 뒤 시골에 내려가 나무 심고 꽃을 가꾸는 조그만 수목원이나 화원을 여는 게 꿈이다. 지천명까지 한 10년쯤 남은 그가 부디 소망을 이루게 되기를 바란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18년, 우리 사회는 ‘큰 일’에서는 하늘의 도리를 목격해 왔지만, 그 사이에 자신을 희생한 무수한 사람들을 다 기억해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옛말에 이 세상에 진짜 선비가 참으로 귀한 것은 그가 타인을 위해 헌신하고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지난 시절 역사에 헌신한 이들을 소중히해야 할 까닭은 그들 가운데 진정한 선비들이 숨어 있어서다.
<한겨레>가 제2 창간을 선언하고 발전기금 모집에 나선 것은 물론 경영의 어려움 탓이 크다. 창간주주이기도 한 노무현 대통령이 월급에서 얼마간을 떼어 기금을 내겠다고 한 것은 민주화 운동에서 쌓은 개인적 연대감의 표시일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를 최고권력자의 불공평한 행위로 앞장서 비난하는 것도 과거 그들이 민주화 운동의 맞은편에 서서 독재권력의 특혜를 누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늘이 하는 ‘큰 일’에서처럼 사람이 하는 이 모든 ‘작은 일’에도 부디 하늘의 이치가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기지만 새는 법이 없다고 하는 말처럼. 이인우 기자 iwlee21@hani.co.kr
하늘이 하는 ‘큰 일’에서처럼 사람이 하는 이 모든 ‘작은 일’에도 부디 하늘의 이치가 스며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성기지만 새는 법이 없다고 하는 말처럼. 이인우 기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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