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이 이달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다. 북한과 미국이 비교적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한국의 발언권도 커진 상황이어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이정표가 될 회담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회담에 임해야 할까?
먼저 1년 넘게 열리지 못한 회담이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딕 체니 부통령을 수장으로 하는 미국 정부내 강경파는 평화적 핵 문제 해결에 큰 관심이 없다. 적당한 수준의 외부 위협은 국가전략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을 사실상 주도해온 것은 이들이다. 그런데 최근 사정이 다소 바뀌었다. 이라크 점령이 3년째에 접어들고 이란 핵 문제도 지지부진하면서, 북한 핵 문제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당위가 커진 것이다. 거기에다 이런 상황에 딱 맞는 협상가까지 나타났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그다.
우리 처지에서 더 주목되는 것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점이다. 북한은 올해 초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새 임기 시작을 계기로 전환점을 만들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하지만 미국은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북한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했고, 그 결과 나온 것이 핵무기 보유 선언이다. 이후 한국은 자칫 눈사태처럼 나빠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바꾸는 데 큰 구실을 했다. 한국의 노력은 지난달 김정일-정동영 면담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후 상황은 그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북한 핵 문제의 기본 성격은 북한이 체제 및 정권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핵 억지력을 선택한 데 있다. 북한의 이런 안보 우려는 경제를 개선해 나가는 데도 큰 질곡이 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 핵 문제의 해결 방식은 대북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핵 억지력 포기와 맞바꾸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6자 회담이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또한 남북한 통일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통일 과정은 크게 평화구조 구축과 경제·사회 통합, 정치 통합 등 세 부분으로 이뤄진다. 대북 안전보장 제공과 경제 지원은 이 중 한반도 평화구조 구축과 남북한 경제 통합의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 사실 통일 과정이 시작된 것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부터다. 하지만 6개월도 안 돼 부시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제동이 걸렸고, 2002년 가을 2차 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거의 빈사 상태에 빠졌다. 핵 문제 해결이 통일 노력에서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필요조건이 된 것이다. 다시 시작되는 6자 회담은 이 필요조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6자 회담은 통일에 대한 전망 속에서만 더 큰 동력을 얻을 수 있다.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더 키워나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 문제 해결 노력이 앞으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군축, 평화구조 확립, 동북아 집단안보 구상 등으로 이어지도록 준비하는 일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6자 회담과 관련해 북한 쪽에 제시한 다양한 경협 안도 남북 경제통합을 위한 기본 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4조는 ‘평화적 통일 정책의 수립·추진’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이 부흥하고 일본이 재무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동북아 중심국을 외쳐도 분단된 한반도로는 공허하다. 한반도와 관련된 어떤 노력도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6자 회담도 예외가 아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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