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30일 내년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 합격 결정사항을 공고했다. 합격한 8종의 교과서에는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이 집필자로 참여한 교학사의 교과서도 포함됐다. 국사편찬위의 심사 과정에서 수정 의견을 반영해 심사본 중 일부 내용을 고치긴 했지만, 현대사를 반공·보수 이념의 편협한 시각에서 재단하는 흐름은 그대로 남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에 대한 부분이다. “5·16 군사 정변 …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고 돼 있는 부분을, 서술 내용을 재검토하라는 수정·보완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5·16 군사 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고 수정했다. 하지만 바로 뒷부분에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고 길게 서술했다.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지만 마치 처음부터 나라 안팎의 전폭 지지를 받았던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그의 독립을 위한 활발한 외교활동, 단독정부 수립의 불가피성, 농지개혁의 성과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했다. 그러나 당대의 최대 정치·사회 과제였던 친일세력 청산과 관련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해체에 대해서는 “공산세력의 소탕에 경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경찰의 행동을 묵인하였다”고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미화 못지않게 심한 게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4·3사건에 대한 왜곡·축소다. 광주항쟁의 가장 핵심 내용인 군인의 총기 발포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나고 진압군이 … 시위대의 일부가 무장을 하고 도청을 점거하였다. … 이 과정에서 희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고 얼버무렸다. 4·3사건에 대해서도 “봉기를 일으켜 경찰서와 공공 기관을 습격하였다. 이때 많은 경찰들과 우익 인사들이 살해당하였다.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무고한 양민의 희생도 초래되었다”고 써, 희생자의 대부분이 양민이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내용에 문제점이 적지 않게 있음에도 검정을 통과한 이상 이제 공은 교과서를 채택해 사용할 학교 현장으로 넘어갔다. 어느 교과서가 균형 있고 건전한 역사를 가르치는 데 적합한지를 가려야 하는 역사 교사들의 책임이 더욱 커졌다. 교육부와 학교장 등은 쓸데없는 분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채택 과정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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