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국정개입’ 문건과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구속영장이 31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원은 혐의 내용을 볼 때 구속수사를 할 필요도, 그렇게 할 만한 일이라고도 보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지난 23일에도 조 전 비서관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 왜 이렇게나 무리하게 밀어붙여 거듭 망신을 자초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의 지적이 아니라도, 검찰이 조 전 비서관에게 씌운 혐의는 억지스럽기 그지없다. 검찰이 그린 사건 얼개로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했던 박관천 경정(구속중)이 허위의 사실을 모아 ‘정윤회 문건’을 만들었고 조 전 비서관은 이 문건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씨에게 유출해 권력 암투에 끌어들이려 한 것이라고 한다. 검찰은 비선 개입 논란 등 ‘정윤회 문건’의 내용도 모두 ‘찌라시’ 따위를 엮은 허위이고, 권력 암투설을 불러온 ‘박지만 미행설’ 역시 박 경정이 꾸민 거짓말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 식이라면 나라를 뒤흔든 이번 논란은 박 경정 한 사람의 거짓말에서 비롯된 ‘불장난’에 불과하고, 조 전 비서관은 헛소동의 배후 인물이 된다. 이는 비선으로 지목된 정윤회씨나 대통령 측근 비서관 등 국정농단 의혹의 당사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몇몇 말고 누가 검찰 주장에 수긍할지 의문이다. 의혹과 논란이 왜 불거지게 됐는지 앞도 뒤도 없고, 사리와 상식, 그리고 이미 드러난 비선 개입의 여러 정황에도 맞지 않으니, ‘짜맞추기 수사’라는 손가락질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니 영장 기각도 당연한 일이다.
검찰의 망신은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꼼짝없이 따르기만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국정농단 의혹을 담은 ‘정윤회 문건’이 보도된 직후,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공개적으로 문건 내용을 ‘찌라시’로 규정하고 ‘문건 유출이야말로 국기문란’이라고 앞질러 단죄했다. 검찰 수사는 그 기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조 전 비서관을 무리하게 엮으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이리저리 휘둘렸으니,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든 것이다.
이번 영장기각으로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던 검찰의 어설픈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청와대 하명에 따르는 데 급급한 나머지 하명수사조차 부실했던 셈이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못한다면, 특검이나 국정조사 등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억지 시나리오대로 의혹을 덮도록 눈감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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