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상대 후보인 고승덕 전 의원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던 조희연 교육감이 4일 항소심 재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1심과 달리 교육감직을 유지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옴에 따라 서울시 교육의 불안정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이 상고할 뜻을 밝힌 만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아봐야 하겠지만, 항소심 판결의 의미는 여러모로 곱씹어볼 만하다.
조 교육감은 선거 당시 고 후보의 영주권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뒤 고 후보가 해명을 하자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1심은 두 차례 행위를 모두 허위사실 공표라고 봤지만 항소심은 첫 번째 기자회견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말 그대로 ‘의혹’을 제기하고 상대방의 해명을 요구한 것이어서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직 후보들이 자유로운 공방을 통해 서로 검증하는 선거의 본질에 비춰 이런 정도의 의혹 제기는 허용 범위 안에 있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지극히 당연하다. 후보들이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운 의혹에 대해 일절 입을 닫아야 한다면 그야말로 ‘깜깜이 선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판부는 조 교육감이 두 번째로 의혹을 제기한 행위에 대해선 추가적인 사실 확인이 미흡했다는 점 등을 들어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선거에 끼친 영향 등 실질적인 측면을 고려해 형량을 대폭 낮췄다. 직접적·단정적 표현을 쓰지 않았고, 투표일이 임박해 의혹을 터뜨려 상대방의 반박 기회를 빼앗는 악의적인 폭로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조 교육감에게 ‘주의 경고’ 처분만 내렸던 것도 같은 맥락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선거가 끝난 지 넉 달이나 지난 시점에 보수단체가 조 교육감을 고발하자 수사에 나섰고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두고 쫓기듯 기소했다. 경솔하고 정치색이 짙은 조처였다. 선관위로부터 함께 경고 처분을 받은 고 후보는 기소하지 않은 점도 형평성 논란을 불렀다. 이제라도 검찰은 자존심을 내세울 게 아니라 수도 서울의 교육 안정성을 염두에 두고 처신해야 할 것이다.
조 교육감도 재판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선거 때 유권자에게 한 약속을 성실히 수행하는 데 매진하기 바란다. 지난 9개월여 동안 재판에 매이면서 ‘특권학교 폐지’ ‘일반고 전성시대’ 등 개혁 공약을 원칙대로 끌고 가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입시 비리를 저지른 영훈국제중에 대해 지정 취소를 2년 유예한 게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하나고의 여학생 차별 선발 비리도 터져나왔다. 일반고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건 더욱 시급한 일이다. 이번 판결의 수혜자는 조 교육감이 아니라 서울시의 교육 주체인 학생·학부모들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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