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서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국회 본회의장 안과 밖에서 공명하며 이어지고 있다. 테러 방지는커녕 ‘괴물 국정원’을 만들어 인권과 민주주의 침해의 암흑국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야당 의원들의 호소는 국회 밖에서 강한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밖에 ‘시민 필리버스터 발언대’를 만들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테러방지법 제정 반대 서명에 나섰다. 필리버스터가 시민 저항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반대의 목소리를 뿌리치고 테러방지법 처리를 강행한다면 군홧발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과거 쿠데타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파국을 막기 위한 중재와 타협의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직권상정된 법안의 수정을 요구하며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영장 없는 감청을 허용한 부칙 조항을 없애고, 정보의 수집 및 추적·조사권을 국정원에 주도록 한 것을 국무총리실 산하 대테러센터가 대신 맡도록 하는 등 ‘독소조항’을 수정한다면 타협에 응할 수 있다는 태도다. 직권상정의 장본인인 정의화 국회의장도 국정원의 감청권을 제한하고 법 자체를 1∼2년의 한시법으로 만들자며 뒤늦게 중재에 나섰다. 인권 침해의 위험을 모두 다 해소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만은 막겠다는 안간힘이겠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야당 주장을 충분히 수용했기 때문에 더 양보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대체 야당의 어떤 주장을 수용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비판은 테러방지법이 테러 방지보다 국정원의 권한 강화로만 이어진다는 게 핵심이다. 그런 걱정은 여당 쪽이 일방적으로 내놓은 법안에 딱히 고쳐진 것 없이 그대로 살아 있다. 뻔한 사실 앞에서도 새누리당은 더이상 협상할 게 없다며 종주먹만 들이대고 있다. 맞불 시위를 벌이며 야당 의원들과 시민을 모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참으로 오만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테러방지법의 강행 처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시계를 삼사십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법안 내용도 그렇거니와 대화와 타협의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고 힘만 앞세우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슈필리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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