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임기 후반기 식물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부패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의혹이 입증된 게 없다”…. 최근 청와대 관계자들이 언론 인터뷰에서 잇달아 토해낸 말들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황당한 음모론, 자의적인 상황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억지 논리에 함몰된 사람들이 국가 운영을 책임지고 나라의 앞날을 결정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참으로 허탈해진다.
청와대에 묻는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곧바로 식물정부가 될 정도로 박근혜 정부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가. 일개 청와대 수석비서관 한 명이 사라진다고 정부가 뇌사상태에 빠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 중의 비정상 아닌가. 역대 정부에서도 청와대 수석이 불명예 하차한 적이 있었으나 식물정부가 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청와대는 비리 의혹에 휩싸인 청와대 참모 한 사람 경질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불필요하게 키우고 확대해서 헤어나오기 힘든 늪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가 “부패 기득권 세력” 운운한 대목은 더욱 실소를 자아낸다. 그 세력이 우 수석 비리 의혹 보도에 적극적인 ‘특정 보수신문’을 지칭한다는 것은 세상이 아는 일이다. 그 보수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정권 편이었다. 이 사회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신문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권과 그 신문 사이에 세상이 모르는 어떤 ‘밀당’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청와대가 그 신문을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일 뿐이다. 우 수석 문제에 관한 한 청와대가 취해야 할 태도는 한 가지다. 진보 언론뿐 아니라 그동안 자기편이었던 보수언론까지 문제를 제기할 때는 그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박근혜 정부는 ‘식물 정부 만들기’ 음모론을 제기하기에 앞서 우 수석 한 사람 때문에 스스로 식물 정부가 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청와대가 ‘우병우 구하기’에 정권의 명운을 걸면서 국정 운영은 완전히 마비 상태에 빠져들었다. 각종 국정 현안에서 야당의 협조를 받을 길도 막혔고, 우 수석 거취를 둘러싼 친박·비박 간의 입장 차이로 여당인 새누리당마저 자중지란에 빠졌다. 무엇보다 우 수석 경질을 원하는 압도적 국민 여론에 귀 막으면서 정권의 도덕성과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청와대는 지금 스스로 식물 정부의 길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