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네오콘은 이념, 트럼프주의자는 이익에서 출발하나, 그 발현양태는 인종주의·반이슬람·군사력 증강·일방주의이다. 트럼프주의자는 거꾸로 선 네오콘일뿐이다. 그들이 한반도에 평화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놓고 한국에서는 민주진보 진영 쪽이 오히려 우려 보다는 기대를 보인다. 미국의 기존 노선에 충실한 ‘모범생’ 클린턴 보다는 ‘종잡을 수 없는 개망나니’ 트럼프가 우리에게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는 기대이다.
클린턴은 월가·군산복합체·주류언론 등의 특권동맹 대변자이고, 트럼프는 이 특권동맹에 희생된 미국 중하류층의 분노를 거칠게나마 반영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가 미국의 기존동맹과 국제문제 개입에 회의적 입장을 보이는 것도 미국 특권동맹의 사활적 이해인 세계패권 유지에 클린턴보다는 관심이 없다는 반영이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한국에 방위비를 더 부담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고,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해도 할 수 없다거나,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직접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한다. 트럼프는 동북아에서 미국 패권을 고집할 이유가 클린턴이나 전임 대통령 보다 약하기 때문이라는거다.
정말 그럴까? 최근 트럼프의 외교안보 진영 인선을 보면, 그 발현양태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 노선과 결과적으로는 비슷할 것이라는 우려가 든다. 마이클 플린 전 국방정보국장이 국가안보보좌관에, 마이크 폼페오 하원의원이 중앙정보국장에,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이 법무장관에 지명됐다. 이들은 인종주의, 반이슬람, 적극적 군사력 대처, 강경한 법집행을 공통분모로 하는 초강경 보수파들이며, 트럼프의 충성파들이다.
’미국판 일베’인 ’대안우익’의 대표자 스티브 배넌이 백악관 최요직 수석전략가 및 수석고문에 이미 기용됐고, ‘미친개’라는 별명의 강경파 해병대 4성장군 제임스 매티스 전 중부사령관이 강력한 국방장관 후보이다. 매티스 역시 중동에서 미 군사력의 적극적 대처를 주장한다.
네오콘들은 기독교적 선악관에 입각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계에 확산하는 것을 미국의 사명으로 보는 우파 이상주의 세력이다. 트럼프주의자들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사명이 아니라, 미국의 국수주의적 이익을 강조하는 극우 현실주의 세력이다. 양쪽 모두 미국 우월주의와 예외주의가 초석이다. 트럼프주의자들은 여기에 더해 백인국수주의가 짙게 깔려있다.
네오콘은 국제문제에서 군사력을 불사하는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표방하며, 기존 동맹국과의 협조보다는 일방주의로 일관했다. 트럼프주의자들은 기존 동맹과의 협조 보다는 방위비 부담을 전가하려는 또 다른 일방주의를 드러낸다. 국제문제에서 미국의 개입과 역할 축소를 말하나, 강력한 군사력 유지를 통한 적극적 대처를 주장한다.
네오콘은 특히 중동에서 이라크 등 반미 국가와 이슬람주의 세력을 소탕해, 친미 민주주의 질서를 전파하는 중동민주화론을 내걸었다. 이는 이라크 전쟁으로 이어졌고, 현재 이슬람국가(IS)를 탄생시킨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외정책이 됐다. 트럼프주의자 역시 중동에서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미국의 최대 안보 위협 세력으로 보고, 우선과제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내세운다. 트럼프주의자들에게 현재 세력이 위축되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은 자신들의 첫 대외정책 성과물이 될 수 있고, 경제적 이익을 충족할 유혹적인 대상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확실시되는 중동분쟁 개입이 확대되면, 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네오콘들은 이라크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는 반이슬람 색채를 희석시키려고 북한을 거기에 끼워넣었다. 네오콘들은 북미정상회담 일보 직전까지 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유화정책을 폐기하고, 북한을 전방위적으로 목조르기했다. 트럼프주의자들에게도 북한과 한반도는 중동분쟁 개입의 끼워팔기 대상이 될 수 있다. 선거과정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던 네오콘들은 트럼프가 당선 뒤 초강경보수 인사로 외교안보 진영을 채우자, 칭찬 일색이다. 그들이 제3의 대선후보로 밀었던 매티스가 국방장관 후보이다.
네오콘은 이념, 트럼프주의자는 이익에서 출발하나, 그 발현양태는 인종주의·반이슬람·군사력 증강·일방주의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공화당 주류들의 기반인 석유·군수·건설·플랜트 등 전통 굴뚝산업 엘리트들의 이익을 구현하는데 공통이다. 트럼프주의자는 거꾸로 선 네오콘일뿐이다. 그들이 한반도에 평화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말자.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