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 행태도 지나칠 정도로 고압적이고 안하무인이다. 일본의 압박에 맞서 국익을 지켜야 할 우리 외교부는 어찌 된 일인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저자세로만 일관하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인지 알 수가 없다.
일본의 소녀상 철거 압박은 한국과 미국을 가리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최근 애틀랜타 주재 일본 총영사가 애틀랜타에 소녀상이 세워질 경우 일본 기업이 애틀랜타에서 철수해 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 극우단체가 미국 연방대법원에 청구한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의 소녀상 철거 소송에서도 이례적으로 의견서를 내 ‘소녀상 건립을 허용하면 미-일 동맹관계를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녀상 비문에 ‘20만명의 여성이 성노예로 끌려갔다’고 적힌 것을 지목해 사실이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역사적 과오에 눈감고 미-일 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어떻게든 소녀상을 없애려고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런 적반하장식 행태는 우리 정부가 자초한 면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외교부는 지난 14일에도 부산시 등에 공문을 보내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이전을 촉구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벌써 세번째다. 외교부는 더 나아가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도 이전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소녀상 이전 촉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당분간 주한 일본 대사를 귀임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일본에 얼마나 약점이 잡혔기에 일본 정부는 이렇게 기세등등하고 우리 외교부는 이토록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기가 찰 일이다. 우리 외교부가 일본 정부의 한국 출장소냐는 항의가 터져 나올 만도 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뒤집힌 듯 일본이 도덕적 우위에 서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2015년의 ‘12·28 위안부 문제 합의’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10억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끝낸다는 이면합의를 해준 게 아니라면, 우리 정부가 일본의 총공세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끌려갈 이유가 없다. 외교부는 이제라도 12·28 합의의 정확한 진상을 밝히고 잘못을 이실직고하기 바란다. 이런 굴욕외교를 한없이 계속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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