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4일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중 최고령이었던 이순덕 할머니가 99살 나이로 별세했다. 5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27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 놓인 이 할머니 영정사진을 또 다른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만지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지난 12일(현지시각) 한국 관련 인권보고서를 내면서, 2015년 타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수정하라고 권고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 등이 미흡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유엔 인권최고기구 산하 기구로, 이번 보고서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유엔의 첫 평가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2015년 12월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당사자인 피해자 동의 없이 진행됐다. 제대로 된 공식 사과도 없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지원 재단에 기금 10억엔을 출연하면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되돌릴 수 없는)”이라고 못박기까지 했다. 일본은 이 합의를 우리 정부에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다. 굴욕적인 협상이며, 박근혜 정권의 숱한 실정 중에서도 특히 뼈아픈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 전화통화에서 위안부 합의에 대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위안부 합의 파기’는 문 대통령의 10대 공약 중 하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존 위안부 합의를 토대로 한-일 관계의 획기적 변화를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긴 안목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한-일은 동북아 정세와 경제 분야 등에서 많은 협력을 해나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초기에 한-일 관계를 끊다시피 했다가 갑자기 위안부 협상에 나서는 등 냉온탕을 오갔던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경제협력 등을 추구하는 ‘투트랙 전략’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