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동성애자 장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4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무죄 석방’ 탄원에 동참하고 언론도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지만 군사법원은 끝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로 당사자는 ‘추행 전과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다. 군사법원이 낡은 시대의 잣대를 들이대 동성애자 인권을 외면한 판결을 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 사건은 해당 군인의 체포에서부터 판결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로 점철돼 있다. 당사자인 이아무개 대위는 부대 지휘관이 승인한 서울 출장 중 체포돼 전역을 7일 앞두고 구속됐다. 군수사관은 수사과정에서 수치스러움을 유발하는 극도로 내밀한 문제를 집요하게 캐물었다고 한다. 이 대위가 동성 군인을 만난 곳은 사적 공간이었다. 성관계도 합의에 따라 이루어졌다. 동성애자가 아니었다면 체포돼 재판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군인권센터는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 군인을 색출·처벌하라’는 지시를 한 뒤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육군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는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일이 범죄가 된 것은 순전히 군형법 조항 때문이다. 현행 군형법 92조의6은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군대 안에서 발생하는 강간이나 강제추행은 군형법의 다른 조항에 따라 범죄행위로 처벌한다. 그런데 92조의6은 그런 강제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성행위 체위를 ‘추행’으로 규정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사실상 동성애 색출을 목적으로 한 조항이다. 동성애 자체를 범죄화하는 규정인 것이다.
유엔은 2015년 우리 정부에 이 조항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으며, 국회에서도 이 조항을 삭제하기 위한 입법 움직임이 일고 있다. 92조의6은 국민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헌법상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악법이다. 군대 내 인권유린을 법의 이름으로 보장해주는 시대착오적인 조항은 하루라도 빨리 없애는 것이 옳다. 정부와 국회가 서둘러 폐지에 나서기 바란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전후로 이뤄진 군대 내 동성애자 색출에 위법 행위가 없었는지도 파헤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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