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청와대’의 민정수석실 문건 300여건에 이어 정무수석실 캐비닛에서도 1361건에 이르는 문서 자료가 발견됐다. 현 청와대는 그 내용 가운데 ‘적법하지 않은 지시’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문서 내용도 문제거니와 ‘정윤회 문건’ 유출이 알려지자 이를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흥분했던 정권이 정작 청와대 기록물을 이토록 함부로 방치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야당 한쪽에선 대통령 지정기록물에 해당한다며 문서 공개와 검찰 이첩을 문제삼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대통령 지정기록물은 생산 당시 문서마다 개별적으로 보존기간을 정해야 하는데 발견된 문서들에선 이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목록조차 비공개하는 바람에 이들 문서가 지정기록물에 포함돼 있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들 문서는 국정농단 등 불법 내지 범죄의 단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문서를 한사코 비공개하자는 이유가 논란의 초점을 ‘기록물 누설’을 둘러싼 갑론을박으로 몰아가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설사 야당 주장대로 대통령 지정기록물이라면 이를 부실하게 방치한 책임은 어쩔 것인가. 현 청와대가 18일 공개한 영상을 보면, ‘박근혜 청와대’는 민정수석실 입구에 보안 검색대까지 설치하며 문서 유출을 막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최순실씨 남편 정윤회씨를 비선 실세로 지목하는 청와대 문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지시로 검색대가 설치됐다고 한다. 국정농단 실상이 바깥에 알려지는 걸 피하려고 종이 한 장 유출하지 못하도록 했던 정권이 비밀스런 청와대 문건을 캐비닛에 내버려뒀다니 쓴웃음을 자아낸다. ‘박근혜 청와대’는 박영수 특검이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군사상 비밀’을 이유로 결사적으로 저지했다. 압수수색이 이뤄지면 범죄 단서들이 공개되는 걸 우려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문서의 내용은 적법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 국민에게 소상하게 공개하는 게 마땅하다. 세월호 조사 무력화 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 언론 활용 방안, 위안부 합의, 국정교과서 추진, 선거 등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소홀하게 다룰 수 없는 중대한 내용이다. 철저한 조사를 거쳐 위법한 부분이 있다면 관련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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