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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여성에게만 굴레 씌우는 ‘낙태죄’ 이대론 안된다

등록 2017-11-26 18:32수정 2017-11-26 19:11

청와대가 26일 낙태죄 폐지 청원과 관련해 내년부터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재개하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법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누리집(홈페이지)에 제안된 낙태죄 폐지 청원이 기준선인 20만명을 넘어서면서 이런 답변이 나왔다. 청와대가 낙태에 대해 공식 견해를 밝힌 만큼 좀더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주관 '낙태죄 폐지 결의 범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석해 손피켓을 든 채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주관 '낙태죄 폐지 결의 범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이 최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려 여성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석해 손피켓을 든 채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청와대 누리집 답변에서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신중절에 관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번 청원을 계기로 우리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행 형법은 임신한 여성이 낙태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시술한 의료인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라 전염성 질환, 강간 등 5가지 경우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데, 임신중절 사유의 70% 이상은 이런 법적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한다. 낙태죄 폐지 쪽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유지 쪽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맞선다.

낙태 논쟁이 오래 계속된 만큼 이번에는 종전의 가치들만 내세워 다시 충돌할 게 아니라 현실적 해법이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여성과 의료인들 입장에서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5년 만에 다시 이에 대한 위헌심판을 진행 중이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조화시키는 방법이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했듯 임신 후 일정 기간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독일의 경우 임신 12주 내에 임신부 동의하에 실시하는 임신중절술은 처벌하지 않는다. 네덜란드와 스웨덴도 임신 초기 본인이 요청한 임신중절은 가능하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시술 전 3~8일간의 숙려기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들 나라처럼 임신중절의 부분 합법화를 검토해야 한다. 모자보건법을 고쳐 임신 주수별로 위법 적용 여부를 달리하거나, 인정 범위를 일부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낙태죄가 여성에게 자기 몸과 삶에 대한 통제권을 주지 않겠다는 남성 중심 국가권력에 의한 여성 시민권의 박탈이자 평등권 침해라는 주장을 일축하기 어려운 게 우리 현실이다. 수많은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과, 범죄로 취급되는 낙태로 인해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이제는 국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합리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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