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시각) 워싱턴 하원의사당에서 새해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지명 철회를 계기로 제한적 대북 예방타격을 뜻하는 ‘코피(Bloody Nose) 전략’이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코피 전략’이란 소규모 외과수술적 타격으로, 북한이 맞대응하지 않을 수준에서 핵 관련 시설 등 북한 핵심기지를 제한적으로 타격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북 군사옵션 가운데 하나다. 이 전략이 백악관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됐는지는 알 수 없다. 빅터 차 내정자의 지명 철회 이유가 이 전략에 대한 반대 때문인지, 개인적 이유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지난 30일 그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보면, 인선 진행과정에서 ‘코피 전략’을 두고 강온 논쟁이 벌어진 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 상황을 심각하고 우려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미국)가 공격해도, 북한이 감히 반격 못 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너무나 한심하고 위험스럽다. ‘북한 반격=체제 붕괴’라는 미국 중심의 사고방식에 따른 판단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강경파들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어떻게 군사적 판단은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는지 의문이다. 수백만명 목숨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짓이다.
코피 전략을 주장하는 인사들은 강경파 군 출신이거나 군사·안보 분야 문외한들이고, 특히 한반도나 북한에 대한 이해는 제로에 가까운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인사들이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오만하고 경솔하기까지 하다. 빅터 차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를 보면, 일부 초강경론자들은 ‘코피 전략’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남한 거주 미국인 23만명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것에 대해서도 ‘장기적 이익’과 ‘본토 거주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만한 일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한국인 5천여만명의 생존은 아예 논외다.
최근 백악관 내 대북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진 이유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접촉이 가시화한 것과 관련이 깊다. 한반도가 화해 분위기로 접어드는 것에 제동을 걸려 한다는 분석이다. ‘비핵화’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에, 제재 강화 시점에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면 북핵이 ‘고착화 단계’로 접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스캔들로 재선은 고사하고, 탄핵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자칫 이른 ‘레임덕’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내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북 타격까지 고려해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 실제로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최근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비공개 모임에서 ‘제한적 대북 타격이 중간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비상한 상황이다.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서, ‘코피 전략’과 같은 무모한 대안은 아예 테이블에서 제외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 당시 남북이 약속한 군사당국 회담도 이른 시간 안에 열어 한반도 군사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게 필요하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 불씨를 살려나가는 게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