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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최악 피한 ‘한-미 FTA 협상’, 가시밭길 끝나지 않았다

등록 2018-03-26 19:23수정 2018-03-27 09:49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이 타결됐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은 최대 관심 분야인 자동차와 제약 등에서 이익을 챙겼다.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안전·환경기준이 완화됐다. 한국산 화물자동차(픽업트럭)의 관세 철폐 시점은 2021년에서 2041년으로 20년 더 늦춰지게 됐다. 다만 가장 우려했던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 사용은 빠졌다. 미국 제약업계의 불만인 한국의 신약 가격 결정 제도도 개편된다. 약값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구체적인 방향은 추후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반면 한국은 협상 전부터 ‘레드 라인’으로 설정한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막아냈다. 또 미국의 수입 규제 조사 과정에서 절차적 투명성·공정성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을 협정문에 추가하기로 했다. 한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이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제도를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도 반영하기로 했다.

자유무역협정 협상과 함께 진행된 철강 관세 협상에선, 미국이 한국산 철강을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한국은 수출 물량을 지난해의 74%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관세는 면제받고 수출 물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관심 분야에서 일부 양보하는 대신 우리의 핵심 민감 분야를 방어했다고 자평했다. 김현종 본부장은 “그동안 미국이 강경한 입장이라 우리가 밀리지 않느냐는 걱정이 있었는데 협상가로 말하자면 제가 꿀릴 게 없는 협상판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번 협상은 처음부터 미국이 창, 우리는 방패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워 일방적으로 우리 정부를 밀어붙였다. 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한-미 공조가 긴요한 시점에서 통상 이슈를 마냥 끌고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냉정히 따져보면, 우리 정부가 이번 협상에서 무역협정의 기본 원칙인 ‘상호 이익균형’을 지켜냈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운운하며 우리 정부를 위협했다. 우리 정부로선 대미 무역흑자 축소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가 2016년 232억달러에서 지난해 179억달러로 대폭 줄었다.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하기도 전에 트럼프 행정부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협상 시작 때는 없었던 ‘철강 관세 카드’를 돌연 꺼내 들어 지렛대로 활용했다. 협상이 예상보다 빨리 타결된 것도 철강 관세 압박 영향이 크다. 미국은 한국을 봐줬다고 생색을 내면서 수입을 30% 가까이 축소시키는 실리를 챙겼고 자동차 분야의 양보까지 얻어냈다. 또 한국과의 협상 조기 타결을 앞세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상대국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압박하고 나섰다. ‘뼛속까지 장사꾼’인 트럼프의 협상술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문제는 이번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그동안 행태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계속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통상 압력을 가해 올 가능성이 크다. 대미 통상 리스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중 무역전쟁까지 불이 붙었다.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 불똥이 튈지 모른다.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통상조직을 재정비하고 전문인력 보강을 서둘러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수출 시장을 다변화해 미국과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외생 변수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 관련 기사 : 한국 ISDS 개선 등 명분 얻었지만 미국은 당장의 실익 챙겼다

▶ 관련 기사 : 철강·자동차 업계 “큰 타격 피했지만 불확실성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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