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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박근혜 중형, 국민의 심판이다

등록 2018-04-06 18:23수정 2018-04-06 20:29

징역 24년, 죄과 비해 무겁지 않다
재판 거부하며 여전히 뉘우침 없어
세월호 희생자들에겐 참회하기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법원이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해온 그에게 내려진 법의 단죄다. 66살의 그에게는 사실상 종신형에 가까운 형량이긴 하나 죗값에 비하면 결코 무겁다고 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정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와 선거법 위반 혐의 공판도 남아 있다. 형량이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이 모든 것이 국정농단에 이어 사법농단까지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안하무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그가 자초한 자업자득임은 물론이다. 이날 선고로 국정농단 1심 선고가 마무리됨으로써 1400만 촛불시민의 힘으로 우리 민주주의 역사도 한 단계 진전을 이루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함부로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18개 범죄사실 대부분에 유죄를 선고했다. 박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은 박영수 특별검사와 검찰의 수사는 물론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펴며 국정농단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1심 재판 과정과 판결을 통해 현직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눈” 국정농단의 구체적인 범죄사실들이 증거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대부분 유죄로 인정됐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취임사 작성부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개최에 이르기까지 국정에 일일이 개입했고 이를 위해 청와대 기밀문서까지 멋대로 받아 본 사실을 법원이 인정했다. 압수수색 절차상 문제 때문에 기소된 47건 문서 가운데 14건만 유죄 판단을 받긴 했으나 국정농단의 실체가 그대로 공인된 셈이다.

현직 대통령이 40년 지기의 이권을 위해 대기업과 공기업을 협박·강요해 돈을 뜯어내고,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이나 사기업 인사에까지 시시콜콜 개입한 혐의도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 최씨가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 납품계약을 위해 대기업을 협박하고, 최씨 회사를 위해 공기업에 광고·인사를 청탁한 사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개인 비리뿐만이 아니다. 정부를 비판하거나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단체·인사들의 명단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차단한 데 대해, 법원은 “평등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못박았다.

특검 수사뿐 아니라 재판 과정에 이르기까지 박 전 대통령이 보여온 태도도 중형 선고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잘못된 국정 운영과 개인 비리로 청와대 참모는 물론 장차관들까지 줄줄이 수감 중인데도 그는 여전히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책임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있다. 현직에 있으면서 특검의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방해하더니, 재판에 넘겨진 뒤에는 노골적으로 재판 진행을 방해해왔다. 검찰이 내놓은 대부분의 증거 채택을 거부해 100명 이상의 증인을 일일이 법정에 불러야 했다. 그 바람에 재판이 늦어져 구속영장을 재발부하자 ‘불구속 원칙’을 내세우며 재판을 거부했고 선고 날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 놓고 재판부의 생중계 방침에는 ‘무죄추정 원칙’을 내세우며 두차례 이의신청에 이어 헌법소원 제기 방침까지 밝혔다. 법 위에 군림하며 사법농단을 자행하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법에도 눈이 있고 감정이 있다.

국정원 특활비 재판도 거부하고 있는 그가 중형 선고 이후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이제라도 진심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생때같은 목숨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절체절명의 시각에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보고 시각까지 조작했다면 사법적 단죄 차원을 넘어 평생을 사죄해도 모자랄 것이다.

고건 전 총리는 그가 대통령이 아니라 아버지 추모사업이나 했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능력이 의심스러운 이가 대통령이 되고 비선 실세에 기대어 국정을 농단하기까지 20여년을 온 국민이 속았다. 언론을 포함해 검찰과 국회 등 모두 성찰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가장 많은 책임을 느껴야 할 이들이 그를 감싸며 발뺌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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