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기록적인 압승을 거뒀다. 이날 밤 개표 결과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은 물론 충청·강원과 부산·울산·경남까지 휩쓸며 14곳을 석권했다. 경남의 경우, 초반 접전이 펼쳐졌으나 개표가 진행되면서 김경수 민주당 후보의 우세가 뚜렷해졌다. 자유한국당은 대구와 경북, 두 곳에서만 당선자를 냈다.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 이처럼 한 정당이 영호남을 넘나들며 대부분 지역에서 승리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뿌리깊은 지역구도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최소 10곳을 휩쓸며 초강세를 보였다. 이로써 민주당은 국회에서 1당 지위를 확고히 하면서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게 됐다.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성향 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진보 교육감 시대를 이어가게 됐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궤멸적 패배를 의미한다. 자유한국당이 지난해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대패하면서 보수 정치권은 일대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당장 이날 밤 홍준표 대표가 사퇴를 시사하는 등 자유한국당은 큰 혼란에 빠졌다. 바른미래당 역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고군분투했을 뿐 대부분 지역에서 미미한 득표에 그쳤다. 보수 정치권 전반이 쇄신과 재편의 기로에 서게 됐다.
이번 선거 결과는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해 국민들이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특히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큰 지지와 성원을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또 문 대통령이 지난 1년간 보여준 소통의 리더십, 적폐 청산 노력에도 지지를 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최저임금 등 경제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있긴 했지만, 한반도 이슈에 묻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지는 못했다. 국민이 이번 선거에서 분명히 집권여당 손을 들어줌에 따라 앞으로 문 대통령은 더욱 자신감을 갖고 평화번영 외교와 개혁 추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이 부산·울산·경남의 광역단체장을 모두 차지한 것은 ‘국민 통합을 위한 지역주의 극복’이란 관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이들 지역은 1995년 지방선거 실시 이후 23년간 민주당계 후보가 한번도 당선되지 못한 곳이다. 대구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크게 선전하는 등 영남권 표심의 변화가 눈에 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이 지역주의 투표 성향에서 벗어나 냉철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일 것이다. 이런 지역주의 극복 흐름은 호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일반화될 때 더욱 힘을 얻을 수 있다.
‘보수의 궤멸’은 이번 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라고 할 만큼 충격적이다. 문 대통령 지지도가 고공 행진을 했고, 초대형 외교안보 이슈가 이어져 선거 분위기가 여당 쪽에 기울어졌다는 야당의 한탄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결과는 놀랍다. 수도권은 물론 영남 등 대부분 지역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 후보들이 맥을 추지 못했다. 1, 2위 후보의 표차가 역대 어느 지방선거보다 컸다. 이런 기록적 패배는 유권자들이 보수 정치인들에게 확실하게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응징’을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의 추락에는 시대 흐름을 꿰뚫지 못하고 시대착오적 언행을 일삼으며 사사건건 훼방놓기에 급급했던 야당 정치인들 책임이 크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좌충우돌식 행보가 대표적이다. 민족의 운명이 걸린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쇼’로 비하하고, ‘지방선거 동시개헌’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등 일련의 무책임한 행태에 유권자들이 철퇴를 가했다. ‘박근혜 탄핵’으로 정권을 내주고도 제대로 반성하지 않은 보수에게 유권자들은 철저한 반성과 쇄신을 요구했다.
이번 선거는 북-미 정상회담 등에 묻혀 어느 때보다 무관심 속에 치러졌다는 평이 많았지만, 투표율이 60.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보였다. 사전투표 제도가 정착돼 유권자의 발길을 이끈 측면도 있지만,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과 참여 열기가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난 대선에 이어 촛불의 요구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라는 국민의 뜻이 반영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중앙에 이어 지방에서도 정의와 공정, 자치와 분권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정부여당은 선거 결과를 놓고 자만에 빠져선 안 된다. 지난 1년의 성과와 잘못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나라 경제를 더욱 꼼꼼히 살피고 서민의 살림살이에 주름살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권력이 오만에 취하면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진다는 것이 자유한국당 추락의 또다른 교훈일 것이다.
보수야당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쇄신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이 그만하면 됐다고 할 때까지 끊임없이 환골탈태를 해야 한다. 이번 선거가 합리적 보수의 재편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