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기무사의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서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의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자료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기각’을 전제로 한 비상계엄 선포문은 물론 심야에 광화문과 여의도 등 주요 지역에 특전사와 기계화사단을 배치해 시위를 막는 계획 등이 담겼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해 3월 이른바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탄핵 기각’ 결정을 전제로 계엄 포고문을 작성하고, 심야에 서울 광화문·국회 등에 탱크와 장갑차, 특전사를 배치해 시위를 진압하는 구체적인 실행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20일 드러났다. 언론에 대한 검열·통제는 물론,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해 야당 의원을 구속해 의결 정족수를 미달시키는 방안까지 마련했다니 경악스러울 뿐이다.
지난 6일 기무사의 13쪽짜리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 공개된 뒤,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 등은 ‘헌재의 탄핵 인용 결정에 반발하는 태극기부대 시위까지 염두에 둔 단순 검토문건’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새로 공개한 67쪽에 이르는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보면, 헌재의 ‘박근혜 탄핵 기각’을 전제로 한 사실이 확인된다. 사실상 군이 촛불 시민을 유혈 진압하려 획책한 것이다. 그 내용을 볼 때 기무사와 국방부뿐 아니라, 당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까지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청와대가 공개한 67쪽짜리 문건은 ‘보안 유지하에 신속하게 계엄선포, 계엄군 주요 (길)목 장악 등 선제적 조치 여부가 계엄 성공의 관건’이라고 적시하고, 이를 위한 세세한 이행 방안을 담았다. 합참의장을 배제하고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추천하는 판단 근거를 제시하고, 국가정보원도 계엄사 통제 아래 뒀다.
병력 동원 계획과 배치 장소, 1979년 10·26과 80년 계엄령 선포 때의 담화문과 함께 계엄 포고문까지 미리 작성한 것으로 보아, 단순한 검토 계획이라 보긴 힘들다. 중요 시설 494개소와 광화문·여의도에 기계화사단 및 특전사를 야간에 투입하기로 한 것은, 시위 예상 지역을 탱크와 장갑차, 공수부대로 미리 차단하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여소야대 상황을 고려해 여당(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정 협의를 통해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고, 야당 의원들은 사법처리를 통해서 국회 본회의 의결 정족수를 미달시키는 계획까지 마련했다는 점이다. 문건엔 계엄사가 먼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 시 구속수사 방침을 발표한 뒤 이를 위반하는 국회의원을 사법처리한다고 명시했다.
문건 내용을 종합할 때,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군부 핵심이 헌재의 탄핵안 기각을 예상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군을 동원해 진압하려는 사실상의 친위 쿠데타를 계획한 것으로밖엔 볼 수 없다. 다만 헌재의 ‘박근혜 파면’ 결정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21세기에 군에서 이런 발상을 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국방부 특별수사단은 성역 없이 낱낱이 전모를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