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케이티(KT) 아현지사에서 케이티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탓에 망가진 시설을 복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케이티(KT) 아현지사 통신관로(통신구) 화재에 따른 통신 장애와 갖가지 피해가 사고 이틀째인 25일에도 이어졌다. 아현지사 관할인 서울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일대와 경기도 고양시 지역 주민들이 유선전화, 인터넷, 이동전화 통신망 마비로 불편을 겪었다. 신용카드 결제 불능으로 나들이객과, 음식점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이 겪은 혼란도 컸다.
케이티는 사고를 제때 복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우회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아이티(IT) 강국에 걸맞지 않은 후진성을 드러냈다. 화재 원인 규명과 별도로 책임을 물어야 할 대목이다.
통신사의 ‘모세혈관’인 통신관로는 땅속에 묻혀 있어 여기에 불이 나면 일반 구조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띠기 마련이다. 산소 부족에 따른 불완전 연소로 연기가 많이 생겨 불을 끄기 어렵다. 통신관로의 케이블 외장 재료가 불에 잘 타고 유독 가스를 내뿜어 작업자와 소방대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문제도 있다. 이번 사고에서 불을 완전히 끄기까지 10시간 넘게 걸렸던 데서 이런 특성을 엿볼 수 있다. 화재 예방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민감 시설인 셈이다. 이런 곳에서 불이 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통신사 쪽에 관리소홀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통신관로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것부터 문제다.
케이티 같은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우회로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케이티 아현지사에 문제가 생기면 여의도지사 쪽으로 돌려서 사용하는 식이다. 통신망 복구 전에라도 별도 경로를 확보해 이용자들의 불편을 덜어줘야 했던 셈이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이틀째 큰 불편을 겪은 데서 알 수 있듯 케이티의 우회로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한 점검과 책임 규명도 아울러 필요하다.
통신 장애로 피해를 본 이들에 대한 보상 또한 케이티 쪽엔 숙제로 떠올랐다. 특히 소상공인들의 영업 피해는 보상한 전례가 없어 자칫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고 한다. 케이티 쪽이 보상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관련 지침을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고 지점이 케이티 단독의 통신관로여서 피해 범위가 케이티망 이용 시민들로 한정돼 그나마 다행이었다. 통신사들이 공동으로 이용·관리하는 관로에서 사달이 났다면 피해 범위와 정도는 훨씬 컸을 것이다. 자칫 국가 기간망 전반의 붕괴로 직결될 수 있었다. 다른 통신사들뿐 아니라 정부 당국도 아울러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전국의 통신관로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시설을 확충해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플랜 비(B)’를 마련해두는 것도 아울러 필요하다. 이번 사고는 인터넷, 에스엔에스(SNS) 따위로 그물망처럼 엮인 ‘초연결사회’에서는 한 분야의 작은 사고가 전체 시스템 마비로 이어져 큰 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