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3일 “반민특위로 국민이 분열했다”는 발언과 관련해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반문특위’”라는 해명을 내놨다.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을 위해 설치됐던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의를 망각한 채 국론 분열만 불러왔다는 발언이 거센 비판을 부르자 이를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황당한 해명이다. ‘반문특위’란 게 무얼 말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나 원내대표는 이런 식의 말장난으로 부박한 역사인식을 가리려 해선 안 된다.
나 원내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면, “문재인 정부는 역사공정의 공포정치를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친북,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완화하거나 없애고자 하는 시도”라며 “저는 이런 시대착오적 역사공정을 비판한 것”이라고 썼다. 이어 “제가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니라 2019년 ‘반문특위’다.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색출해서 전부 친일 수구로 몰아세우는 이 정부의 ‘반문 특위’를 반대한 것”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역사 접근방식을 비판했다는 취지인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 발언이 면책될 수는 없다. 비뚤어진 역사의식에 대한 반성 없이 정권 비판을 명분으로 두루뭉술 넘어가려는 것이며, 있지도 않은 ‘반문특위’라는 조어를 내놓아 국민을 헷갈리게 하려는 저의까지 엿보인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을 모두 기억하실 것이다. 또다시 대한민국에서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분명히 ‘2019년 반문특위’가 아니라 ‘해방 후 반민특위’를 언급했고, 친일파를 청산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다 좌초한 반민특위가 국론 분열만 가져왔다는,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정권 비판의 와중에 스스로의 수구적 역사인식을 엉겁결에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나 원내대표는 더이상 궁색한 변명으로 빠져나가려 해선 안 된다. 속 보이는 해명은 또 다른 비판을 불러올 뿐이다. 담백하게 자신의 문제 발언을 사과하고 일제강점기 순국 선열과 독립 유공자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제1야당을 이끄는 중견 정치인답게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