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가 2018년 11월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믈을 닦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본이 20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한 양국간 분쟁을 중재위원회에 회부하자고 한국에 요청했다. 한국이 ‘외교 협의’에 응하지 않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후속 조치에 나선 것이다. 중재위는 한·일 양국이 각각 선임한 중재위원과 양국이 합의해 선임한 제3국 중재위원 등 3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구성될 수 없다. 그럼에도 일본이 일방적으로 중재위를 요청한 것은, 실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보다는 국제분쟁화를 노리고 국내 여론을 겨냥한 행동으로 보인다.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강제징용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라며 극도의 거부감을 보여왔다. 일본제철 등 전범기업에는 “배상이나 화해에 응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한국 정부에는 “청구권 협정 당사자로서 알아서 책임지고 해결하라”고 요구해왔다. 최근 징용 피해자 변호인단이 일본제철 등의 자산 매각을 신청한 것과 관련해선, 고위직 인사들이 나서 비자발급 제한과 무역제재 등 보복 조처까지 언급했다.
일본이 성사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도 ‘중재위 회부’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정치적 제스처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압박은 한국이 삼권분립의 민주국가라는 사실을 무시한 일방적 행동으로, 문제 해결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일본이 정말로 분쟁 해결을 원한다면, 일본 기업에 내린 배상 및 협의 거부 지시부터 철회하는 게 옳다. 그러고 나서 한-일 정부가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게 수순일 것이다.
한국 정부도 최악인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과 ‘대화’에 나서는 걸 주저할 이유가 없다. 6월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일 정상 간 대화 채널부터 복원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