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건강보험 차별 폐지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26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이주민 차별이 강화된 건강보험제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7월16일부터 개정 시행된 ‘외국인 건강보험’ 제도가 요즘 국내 체류 외국인들에게 ‘폭탄’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내국인과 달리 지나치게 좁은 세대 구성원 인정범위, 저임금 종사자가 많은 현실에 대한 고려 없는 일률적 보험료 부과 등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번 개정의 핵심은 6개월 이상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및 재외국민의 건보 지역가입을 의무화한 것이다. 예전엔 3개월 이상 체류 시 임의가입하는 형태였다. 그동안 막혀 있던 인도적 체류 허가자의 가입도 허용했다. 직장가입이 가능한 사업장 종사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국내에 합법체류하는 외국인 40%가 건보가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좋은 취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에 대해선 건보 가입의 혜택을 본인과 배우자, 미성년 자녀로만 한정했다는 것이다. 보험료 책정도 소득·재산 파악이 어렵다는 이유로 전체 가입자의 월평균 보험료(올해 11만3050원)를 이들에게 일괄 적용했다. 최저임금 수준의 외국인 노동자가 경우에 따라 수십만원의 보험료를 물게 된 셈이다. 26일 열린 인권·이주자 단체들의 기자회견에선 병든 어머니와 고령의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20살의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동포에게 11만여원씩 부과된 3개의 건보료 고지서가 날아온 사례가 소개됐다. 나아가 정부가 체납자에 대해선 체류기간 제한 등 조치를 하겠다고 밝혀, 외국인들에겐 개정 건보 제도가 ‘체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기가 막힌 건 이런 제도가 이들의 평균소득이나 거주형태 등에 대한 실태조사 한번 하지 않고 시행됐다는 점이다. 건보의 보장성 강화에 맞춰 부정사용자를 줄여야겠다는 정부 입장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현실 파악 없이 외국인들에게 일괄 적용하는 제도를 도입한 건 ‘차별’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내국인이라면 시뮬레이션을 해도 몇차례는 했을 사안이다. 관련 단체에선 ‘건보 적자를 줄이려고 손쉬운 외국인들을 상대로 돈을 더 거둬들이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거주자 300만명 시대에 걸맞은 인식과 제도를 만드는 데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정부의 정책이 ‘차별’과 ‘배제’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실태 파악과 함께 특히 취약 이주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는 데 지금이라도 나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