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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세상 떠난 아이 ‘정치 협상’ 카드 삼는 건 야만”이란 절규

등록 2019-12-01 16:07수정 2019-12-02 02:35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부모 기자회견에서 고 김태호군의 어머니가 오열하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 연합뉴스

“아이들을 위해 과속단속카메라 달아달라는데…, 왜 우리 민식이가 그들의 협상 카드가 되어야 하나.”(민식이 엄마 박초희씨)

“이런 분들을 제가 세금을 내서 국회로 보냈다. 정말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를 하시는 분들 얼굴 한번 보고 싶다.”(하준이 엄마 고유미씨)

지난 29일 밤 이른바 ‘민식이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무산된 뒤 어린이 안전법안을 주도해온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에서 쏟은 울분과 오열은 한국 정치가 과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던졌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엄마·아빠들은 모두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딴 어린이 안전법안 입법에 힘을 쏟아왔다. 민식이법, 해인이법, 태호·유찬이법, 하준이법, 한음이법…, 세상을 떠난 아이들 이름을 딴 법안이 무더기로 국회에 올라오는 현실 자체가 참담한데, 그런 법안들마저 정치적 협상과 거래의 대상으로 삼는 건 고유미씨 말대로 ‘야만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어쩌다 한국 정치가 이런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는지 안타깝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직접적인 책임은 자유한국당과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있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검찰개혁법안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해, 29일 오후 민식이법을 포함해 199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해 입법을 막았다. 더구나 나경원 원내대표는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민식이법을 먼저 상정해 통과시킬 수 있음을 국회의장에게 제안한다”고 말해, 선거법과 민식이법을 연계했음을 감추지 않았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치적 행동을 치장하던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저녁에 열린 해인이, 민식이, 하준이, 태호 유가족의 기자회견은 그토록 기다려온 입법이 좌절된 데 대한 허탈함과 분노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정치를 펴는 정당과 국회라면 과연 내년 4월 총선에서 새 국회의원을 뽑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패스트트랙 법안이 중요해도 이렇게 막 나가는 건, 아이를 둘로 갈라서라도 한쪽을 차지하겠다는 솔로몬왕 우화의 가짜 엄마 심보와 다를 게 없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지금은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의 통과보다 민식이법을 비롯한 민생법안 입법이 먼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여야는 당장 오늘이라도 본회의를 열어 민식이법과 유치원 3법 등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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