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등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노조 와해 사건 선고 공판 뒤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삼성이 18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괴 사건에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이유로 전날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을 비롯한 전·현직 임원들이 무더기로 실형(1심)을 선고받은 데 따른 것이다. 8월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 사건에 대법원 유죄 판결이 났고, 이달 들어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 인멸, 삼성에버랜드 노조 파괴 사건에서도 유죄 선고(1심)가 내려진 바 있다. 눈부신 실적의 글로벌 기업이라는 명성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참담한 모습이다.
삼성의 노조 파괴 사건은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150쪽 분량의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공개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론화됐다. 두 차례의 법원 판결에서 인정했듯이, 삼성은 노조 결성 움직임이 나타나면 대응팀을 꾸려 감시하고 표적감사·해고·위장폐업을 통해 노조 파괴를 일삼았다. 이런 ‘범죄적 행동’을 법정에서 단죄하는 데 6년이나 걸렸다. 검찰이 수사를 한 차례 덮고, 뒷돈을 받은 경찰관이 탈법을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터이다. 노동부와 경총도 외부 조력자 행세를 했다.
삼성은 8월 대법원 판결 직후에도 삼성전자 명의의 입장문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사건의 무게에 걸맞은 울림을 주진 못했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언급에 그쳤을 뿐이다.
삼성은 이번 입장문에서도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며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럽에서 노동조합을 합법화한 게 100년도 훨씬 지난 일인데, 글로벌 기업 삼성이 이제야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을 되돌아보겠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안이하기 짝이 없고,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건지 의구심을 갖게 하는 사과문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당장 중단하고 ‘노조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마땅하다. 파괴 공작의 대상이었던 노조원들에게 사과하고, 노조를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궁극적으로는 회사에도 유익하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그룹 최고 경영진이 직접 반성의 뜻과 함께, 시스템 개선책을 내놓고 환골탈태의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