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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삼성 준법감시위, ‘이재용 재판용’ 이벤트 안돼야

등록 2020-01-02 18:50수정 2020-01-03 02:36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3회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삼성이 2일 외부 인사 6명과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기로 하고, 위원장에 진보성향 법조인으로 평가받는 김지형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처는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횡령 사건과 관련한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재판장이 삼성에 준법경영 개선 조처를 주문한 데 따른 대응책으로 보인다. 삼성은 과거 대형 불법비리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쇄신안을 내놨지만 모두 흐지부지됐다. 이번 조처가 또다시 이 부회장 재판을 겨냥한 ‘일회성 이벤트’가 돼서는 안 된다.

기업의 준법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은 지 이미 오래다. 파기환송심 첫 재판 때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도 “삼성 안에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피고인들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 등도 이런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뇌물사건은 물론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증거인멸, 노조와해공작 사건에서 줄줄이 유죄가 선고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위상이 진작에 땅에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만시지탄의 느낌이다.

삼성은 안기부 엑스파일 사건 등으로 사회적 비난이 커지자 2006년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삼지모’(삼성을 지켜보는 모임)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의 쓴소리를 듣겠다는 취지와 달리 뚜렷한 역할이 없어 “여론 무마용”이라는 지적을 받다가 흐지부지됐다. 2008년 비자금 의혹 사건 때도 이건희 회장 퇴진, 사외이사 투명화 등을 포함한 쇄신안을 내놓았으나 역시 이 회장 복귀와 함께 없던 일이 됐다. 이어 2017년 이재용 부회장 구속 뒤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 로비창구인 대관업무 폐지 등의 쇄신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삼바 분식회계 증거인멸 등 불법은 이어졌다.

삼성은 지금이 불법경영의 ‘흑역사’를 단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이 부회장의 재판에서 실형을 면하기 위한 ‘형식적 기구’로 안이하게 생각한다면 국민의 지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 정말 잘못을 뉘우친다면, 준법감시위 구성에 그치지 않고 이 부회장의 진솔한 사과와 엄정한 책임자 문책이 병행돼야 한다. 항소심 재판부도 준법감시위 설치를 형량을 낮춰주는 핑계로 이용할 경우 법치주의 훼손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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