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특정 정책이나 가치를 지향하는 의제정당의 국회 입성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서 바라본 국회 본회의장의 야경.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되는 4·15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가치와 정책을 앞세운 신생 정당의 창당 움직임이 활발하다. ‘여성의당’ ‘기본소득당’ ‘교육당’ 등 개별 의제를 전면화한 이른바 ‘의제 정당’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던 유권자의 다양한 관심과 욕구를 대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준연동형 선거가 처음인 만큼 약간의 혼란도 예상되지만, 이런 실험이 한국 정치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새로 싹트는 의제 정당들은 특정 인물이나 이념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존의 정치 언어를 거부한다. 여성의당은 세대를 아우르는 페미니스트들이 참여해 기성 정치에서 제대로 대표되지 못했던 여성 주권의 문제를 전면화할 계획이다. 교육당은 교육 문제의 전면 해결을 내세웠고, 기본소득당은 비례후보 4명과 지역구 후보 2명을 출마시켜 원내 진입을 노리고 있다. ‘플랫폼 정당’과 ‘3040세대’를 내세우는 ‘시대전환’은 기후환경 등 다양한 의제그룹이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돼 ‘솔루션’(해결책)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의제 정당 실험은 군소 정당이 정당득표율 기준 3%를 넘으면 1석이 아니라 3~4석을 얻을 수 있도록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크게 활성화됐다. 기준점만 넘으면 정치적 발언권이 세지는 셈이다. 득표율 3%, 대략 70만표를 넘는 정당이 둘만 연합해도 입법 발의 요건인 국회의원 10명에 가까워진다. 이 때문에 3% 벽을 넘지 못했던 녹색당이나, 득표율에 비해 훨씬 적은 의석에 그쳤던 정의당 등 기존 정당도 신생 정당과의 정책연대를 추진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선 명실상부한 다당제 국회의 등장을 점쳐볼 수 있을 터이다.
이 와중에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 의석 몇 석 더 얻겠다고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을 밀어붙이는 것은 지극히 퇴행적이다.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국회로 수렴한다는 선거법 개정 의미를 정면으로 짓밟는 것일뿐더러, 의제 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유권자들은 이젠 새로운 투표 양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종전까지 사표 심리 탓에 작은 정당을 찍지 못하고 거대 정당에 표를 몰아주었지만, 이번 선거에선 자신의 가치에 입각해 마음에 드는 정당에 흔쾌히 ‘정당 투표’를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다양한 의제 정당, 젊은 정당의 출현이 우리 정치의 모습을 확 바꾸기 위해선 유권자들의 응원과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