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생존자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9일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나 수십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일하던 작업자의 절반 이상이 숨지거나 다쳤다. 무엇보다 사상자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대형 화재가 날 때마다 정부는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만, 잊을 만하면 비슷한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하 2층에서 1차 폭발이 일어났고 작업자들이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불길과 유독가스가 건물 전체로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 2층에서 ‘우레탄폼 단열 공사’를 하고 있었고, 이때 나온 유증기에 의해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유증기는 작은 불꽃만 튀어도 폭발할 수 있기 때문에 불을 머금은 거대한 공기나 다름없다.
이번 사고는 지난 2008년 같은 이천에서 일어난 냉동창고 공사 현장 화재 참사와 판박이다. 당시에도 작업자 57명 가운데 40명이 현장에서 숨졌다. 내부 단열재로 우레탄폼을 썼고, 건물 외벽은 ‘샌드위치 패널’이었다는 것도 일치한다. 우레탄폼과 샌드위치 패널은 값이 싸고 단열성이 좋아 특히 물류창고 건축 자재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불길이 쉽게 번지고 유독가스를 대량 배출한다.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대형 화재 참사가 유난히 자주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참사도 제도 자체에 여전히 빈 구멍이 많은 것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벽과 벽 사이에 들어가는 단열재에 대해서는 안전 규정이 따로 없다. 강제 규정이 없는 탓에 건축주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싼 단열재를 사용할 가능성이 큰 게 현실이다. 2004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전국의 지하철 객실은 모두 불연재로 교체됐다. 되풀이되는 물류창고의 대형 화재를 막기 위해서는 현장 관계자들을 처벌하는 것으로는 어림없다. 이참에 민간 건축물에도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하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응해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안전 사회’로 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자세로 비상한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