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9년 10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특검 조사를 받은 지 3년3개월 만이다.
검찰 조사의 핵심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 의혹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회계사기 사건에 이 부회장이 관여했는지 여부다.
삼성 총수가 경영권 승계에 핵심적인 사안들을 몰랐다는 것은 국민의 상식에 반한다. 이 부회장은 최근 경영권 승계 논란에 대해 국민에 사과했다. 진정성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최종 수혜자다.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지만, 삼성물산 주식은 한 주도 없었다. 삼성은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는 일부러 낮추고 제일모직은 부풀려 합병비율을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정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또 삼바는 2015년 11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기준을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꿔 장부상 4조5천억원의 이득을 얻은 혐의를 받는다. 미국 제약회사인 바이오젠이 삼성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을 보유한 데 따른 1조8천억원의 부채를 재무제표에 반영하면 삼바가 자본잠식에 빠지게 돼 합병비율의 정당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미 삼성 사령탑이었던 미래전략실과 삼바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이 부회장이 직간접으로 관여했음을 뒷받침하는 내부문건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삼성은 합병과 회계처리에 위법한 내용이 없고, 이 부회장이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법원은 이 부회장의 뇌물 공여 사건 재판에서 미래전략실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삼성 총수가 자신의 직할 조직인 미전실에서 자신의 이해와 직결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수년간 벌였는데도 이를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준법경영을 약속했다. 하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부회장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으려면 구체적인 준법경영 실행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동시에 검찰 조사에서도 있는 그대로 진실을 털어놔야 할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한 굴레에서 조속히 벗어나는 것은,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이 코로나와 미-중 신냉전으로 인한 불확실성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