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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1년 만에 땅 디딘 노동자, 마지막 고공농성자 되길

등록 2020-05-29 19:46수정 2020-05-30 02:34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네거리 교통관제탑에서 355일 만에 고공농성을 끝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네거리 교통관제탑에서 355일 만에 고공농성을 끝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서울 강남역 네거리 교통관제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땅으로 내려왔다. 지난해 6월10일 탑에 오른 지 355일 만이다. 김씨가 버텨온 탑 위는 역대 어느 고공농성장보다 비좁았다. 단식도 세차례나 했다.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의 안전과 건강이 큰 걱정이었는데, 이제라도 삼성과 합의를 이뤘으니 다행이다.

김씨는 삼성에서 해고된 뒤 25년 동안 복직 싸움을 해왔다. 노조 문제로 납치와 감금, 폭행, 협박 등 삼성 쪽으로부터 갖은 시달림을 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탈 없이 직장생활을 했더라도 올해 예순한살이니 이미 정년이 지난 나이다. 그러나 김씨 개인과 삼성 간의 세세한 합의 내용을 떠나, 삼성이 창사 이래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면서 숱한 피해를 양산한 데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라는 점에서 사회적인 의미가 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로, 삼성과 김씨의 협상 타결 여부는 이 부회장 사과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가늠자였다. 그러나 협상 과정은 지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은 29일 짧은 입장문을 내어, “그동안 인도적 차원에서 대화를 지속했다”고 밝혔다. 굳이 ‘인도적 차원’이라고 못박음으로써, 이 사안을 노동기본권이 아닌 도의의 문제로 돌리려는 의도가 아니기를 바란다. 김용희씨의 고공농성을 협상으로 해결한 만큼, 삼성은 이제 다른 해고노동자들에 대해서도 그 피해에 상응하는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고공농성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된 지 오래다. 2010~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309일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에도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이 끝없이 이어졌고, 농성 기간도 갈수록 길어졌다. 지난해 초에는 파인텍의 홍기탁·박준호씨가 426일이라는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끝에 겨우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노동 문제가 노사 간의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풀리지 않는 것은 노동권과 노조에 대한 기업들의 시대착오적인 인식 탓이 크다. 그 맨 앞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이 서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기업들의 낙후한 노동 인식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업도 삼성이다. 부디 김용희씨가 마지막 고공농성자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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