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시작하기 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8일 “미국은 남북 협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남북 협력이 한반도에서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또 북-미 협상 의지를 강조했지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교착 상태를 돌파할 구체적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미국이 ‘남북 협력’ 중요성을 강조한 건 의미 있는 만큼, 이제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게 긴요해졌다.
비건 부장관은 외교부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남북협력에서 북한과 공동의 목표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가 그동안 ‘남북협력은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여러 차례 발목을 잡은 걸 생각하면, 훨씬 진전된 입장 표시로 평가할 만하다. 미국의 이런 태도가 말로만 끝나지 말고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우선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한-미 워킹그룹 운영을 대폭 개선할 구체적 방안을 한-미 당국이 빨리 내놓기를 바란다. 내달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 또는 취소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본다. 미국내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수천명의 미군이 한국으로 이동하는 훈련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한반도 정세 관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북-미 협상 재개를 바란다는 ‘립 서비스’만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만약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며 3번째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긍정적 태도를 비쳤지만, 이 정도 말로는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어렵다. 북한에 일방적 비핵화 조치만 요구하지 말고,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비핵화와 대북 제재 완화를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구체적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 우리 정부가 전면에 나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킴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북-미 협상 재개를 이끌어내야 할 때다. 지난달 북한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군사적 긴장은 여전하고,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이 북한과 진지한 대화를 준비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선 새 외교안보팀이 담대하게 돌파구를 만드는 게 절실하다. 미국은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