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임을 발표하면서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8월 초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했다”며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총리 자리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측근들도 예상치 못한 전격 사임이다. 자민당이 곧 차기 총리를 선출할 때까지는 아베 총리가 직무를 수행한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재집권한 뒤 7년8개월 넘게 재임한 역대 최장수 총리다. 1차 집권까지 합하면 8년 반을 집권했지만, 전체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아베 1강’ 독주 체제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관료들이 총리 관저의 눈치만 보는 ‘손타쿠 현상’의 폐해가 심해졌고, 측근 인사들이 연루된 특혜 스캔들도 잇따라 일어났다. 무소불위로 보였던 아베의 권력은 올해 들어 코로나19 대응 실패, 도쿄올림픽 연기 등으로 급격히 무너졌다.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일본 경제의 체질 개선을 추진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전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베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일본은 급격히 우경화했다.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집단적 자위권 법제화를 강행했고, 평화헌법 9조를 바꾸려는 개헌을 줄기차게 추진했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가 ‘혐한’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한-일 관계를 크게 악화시킨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공격하면서 보복성 수출규제를 강행했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집요하게 방해했다.
아베 총리의 사임이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에 빠진 한-일 관계를 개선할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후임 총리로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이 거론된다. 누가 후임 총리가 되든 우리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오랜 세월 기다려온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을 막지 말고, 외교적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아베 정부의 퇴장을 계기로 한-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역사문제 해결과 외교·경제 사안을 투트랙으로 진전시킬 전략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중 신냉전의 거대한 파고에 대비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한-일 관계를 계속 이대로 가져갈 수는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