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혐의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누리집 ‘디지털교도소’가 무고한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인 현실에 대응해 공식적인 사법적 판단과 별개로 ‘응징’ 차원에서 신상공개를 한다는 게 이 누리집의 개설 취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억울한 피해자를 낳는다면 정당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아무리 명분 있는 일이어도 합리적인 방식과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지난 6월 이 누리집에 성착취물 구매자로 신상이 공개된 한 대학교수는 경찰 수사를 통해 두 달여 만에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누리집에 공개된 연락처로 욕설·협박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밀려들고 소속 학회의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등 당사자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오죽하면 무혐의가 밝혀진 뒤 “죽음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했을까. 디지털교도소는 7월에도 엉뚱한 사람의 신상을 공개했다가 당사자의 항의를 받고 잘못을 인정한 바 있다. 또 신상정보가 공개된 한 대학생이 결백을 주장하다 지난 3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성범죄는 단호하게 응징해야 할 중대한 범죄인 만큼 부당하게 성범죄자로 낙인찍혔을 때 입는 피해 또한 심대하다. 누군가의 성범죄 혐의를 공론화할 때는 철저한 사실 확인이 전제돼야 한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가릴 역량이 부족한 채로 정의감만 앞세워서는 성범죄 근절이라는 대의마저 손상시킬 수 있다. 특히 신상정보 공개라는 방식은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징벌 효과를 가져온다. 사법절차를 통해 처벌받은 성범죄자라 하더라도 별도의 심사를 거쳐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신상을 공개하는 이유다. 무고한 이에게 적용됐을 때의 폐해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현행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신상공개 행위에 대해서는 무거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성범죄에 대해 ‘사적 응징’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현실을 사법부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의 고통이 극심하고 광범위한 데 반해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누리집 ‘웰컴투비디오’를 운영하고도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손정우가 단적인 예다. 성범죄 양상은 갈수록 극악해지고 있는데 형사사법체계를 통한 대응은 한참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 양형기준 상향 등 필요한 조처를 신속히 진행하고, 신상정보 공개 제도도 사회적 눈높이에 맞춰 기준과 절차를 보완해야 한다. 성범죄에 대해 가혹할 정도로 엄중히 대응하고 공적인 신상정보 공개 시스템을 부단히 정비해나가는 게 근본적인 해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