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사설] ‘과거사 배상’ 법원 조정도 내치는 국정원의 억지

등록 2020-11-05 06:59수정 2020-11-05 09:43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7월 인사청문회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배상액을 줄이는) 그런 확정판결을 했기 때문에 국정원으로선 어쩔 수 없었지만, 법원의 조정이 있다면 우리의 잘못으로 피해자들의 배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법적 검토를 해서 꼭 처리하도록 하겠다”며 전향적 조처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법원 조정을 거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는 박지원 국정원장.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 7월 인사청문회에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대법원에서 (배상액을 줄이는) 그런 확정판결을 했기 때문에 국정원으로선 어쩔 수 없었지만, 법원의 조정이 있다면 우리의 잘못으로 피해자들의 배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법적 검토를 해서 꼭 처리하도록 하겠다”며 전향적 조처를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정원은 여전히 법원 조정을 거부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선서하는 박지원 국정원장.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과거 ‘간첩 조작’ 등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았다가 법원 판결이 바뀌면서 일부를 반환하게 됐는데, 불어난 이자 등으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보다 못한 법원이 피해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정안을 내놨으나 국가정보원이 이조차 거부하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1974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가 고문으로 조작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8년 옥살이를 한 이창복씨의 사례를 보면, 2009년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금의 65%인 10억9천만원을 가지급받았으나 2년 뒤 대법원이 배상금을 대폭 줄이면서 오히려 4억9천만원을 반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배상금은 ‘빨갱이’로 낙인찍힌 40년의 신산한 삶에서 신세 졌던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빚도 갚으면서 모두 사용한 터라 돌려줄 돈이 없었다. 결국 지연이자까지 붙어 반환할 액수는 13억원으로 늘어났다. 국정원은 이를 받아내기 위해 이씨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경매에 넘겼다. 법원 판결로 받은 배상금이니 믿고 사용했을 텐데 하루아침에 채무자가 되고 집까지 잃게 된 것이다.

이씨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은 또 한차례 국가로부터 배신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배상금을 낮게 책정한 대법원 판결이 사리에 맞는지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에 법원은 지난 6월 이씨가 반환해야 할 금액 중 이자를 면제하고 원금 중 일부를 먼저 내면 경매를 취하하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최근 법무부도 과거사 관련 소송에서 불합리한 결과가 나온 경우 이를 해소하는 방안을 장관에게 권고하는 ‘화합과 치유를 위한 국가송무심의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법원 조정안을 수용하려는 조처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반환금 전액을 돌려받지 않으면 배임을 저지르는 것이라며 조정안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이 국세청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법원 조정을 받아들여 법인세 환급금의 일부만 돌려받았다가 회사에 대한 배임 혐의로 기소된 사례를 들고 있다는데, 이 사건은 검찰의 정치적 기소였고 무죄가 확정됐다는 점에서 황당한 견강부회다. 억지 논리로 인권침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기고 있는 국정원의 행태를 보면서 정보기관의 부끄러운 과거를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국정원은 지체 없이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