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하여 법원의 명령 등 일정 요건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했다. 검·언 유착 의혹을 받는 한동훈 검사장이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에 협조하지 않으면서 수사가 사실상 멈춘 것을 지적하며, 이런 경우 비밀번호를 밝히도록 강제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검·언 유착 사건의 맥락을 떠나 이런 법을 만드는 것은 수사기관의 인권침해와 과잉수사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위험한 발상이다.
형사 피의자가 자백을 강요당해선 안 된다는 것은 형사절차법의 대원칙이다. 우리 헌법도 제12조 2항에서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피의 사실의 증거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큰 휴대전화를 수사기관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진술하라는 것은 이 원칙에 위배될 여지가 크다.
휴대전화의 수사상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비밀번호 해제는 외국에서도 논란이 뜨거운 쟁점이다. 추 장관이 예로 든 영국에서는 법원의 명령이 있을 경우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밝히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 법이 있다. 반면 미국에서는 비밀번호 강제 해제가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을 강요받지 아니한다’는 수정헌법 조항에 위배되는지를 두고 주 법원마다 엇갈린 판결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그렇잖아도 수사기관의 과잉 수사와 법원의 영장 남발 등이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 만큼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휴대전화는 현대인에게 프라이버시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압수수색 자체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 더구나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내용에 쉽게 접근하는 길을 열어준다면 인권 측면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