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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이런 식의 ‘의사 국시’ 허용, ‘나쁜 선례’만 남긴다

등록 2020-12-31 18:03수정 2021-01-01 02:40

지난 9월1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한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카드뉴스.
지난 9월1일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소가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을 비판한다며 페이스북에 올린 카드뉴스.

정부가 의사 국가시험(국시)을 거부했던 본과 4학년 의대생들에게 1월 안에 재시험 기회를 주겠다고 31일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자 의사 부족 문제가 현실화하는 것을 막겠다며 내놓은 고육책이다. 결과적으로 의대생들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국가 정책이 그들 손바닥 위를 한치도 넘어서지 못한 꼴이 됐다. 재시험 결정의 불가피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과연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의대생들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공공의대 신설에 반대하며 국시를 거부했다. 10년에 걸쳐 4000명 늘어나는 지역의사를 의료시장의 경쟁자로 여기고, 국민 건강이라는 공적인 가치를 외면한 직능이기주의의 전형이다. 재시험 결정은 밥투정하며 걷어찬 밥상을 다시 차려주는 모양새다. 국시 거부가 의사들의 불법 진료 거부와 목적이 같았다는 점에서, 의사들은 국민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벌여도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특권의식만 키워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의 부정적 여론, 다른 국가시험과의 형평성 등을 ‘재시험 불가’의 사유로 강조해왔다. 국민 다수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다. 물론 의료 공백 같은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 앞에서 정부가 원칙만 내세우기는 어렵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문제는 두가지 사유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정부가 보여주지 않은 데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국민 공감대는 어느 정도 인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스엔에스(SNS)에는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를 꼬집는 글들이 줄지어 오르고 있다. 엄청난 사회적 고통을 일으킨 문제에 대해 국민 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면, 두고두고 나쁜 선례가 될 게 뻔하다. 정작 아무 잘못도 없이 코로나 때문에 다른 국가시험을 포기한 이들에 대한 구제책은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의사 국시 재실시가 불가피하다면, 정부는 이제라도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과정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의사단체와 그동안 어떤 논의를 거쳤고, 국민 건강권 강화를 위해 어떤 양보를 받아냈거나 협의를 하고 있는지 공개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의료 정책에서 따돌리고 소외시켜도 되는 들러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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