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한 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 고 배춘희 할머니를 비롯해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2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위안부’ 피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로, 국제적인 반인도 범죄의 책임 소재를 법적으로 못박고 피해자에게 실질적 정의 회복의 길을 튼 역사적 의미가 크다.
재판의 쟁점은 우리 법원이 일본 정부의 행위에 재판권을 갖느냐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한 국가의 주권적 행위를 다른 나라에서 사법 판단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국가면제’ 이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판부는 “(‘위안부’는) 당시 일본제국이 비준한 조약 및 국제법규를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소 헌장에서 처벌하기로 정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해당한다”며 “국가면제 이론은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그 이론 뒤에 숨어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류 보편의 인권을 규정한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현대의 국제법적 근거에서 도출한 지극히 상식적인 법 해석이다.
국제법 질서는 강자의 논리를 반영하는 측면이 크다.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자국민에 대해 독일 정부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이후 국제사법재판소는 독일의 손을 들어주는 보수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국제법은 고정불변이 아니며 인류가 성취한 인권·정의의 가치에 발맞춰 변화해야 한다. 게다가 전범국으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 배상 노력을 기울여온 독일과, 아무런 사과도 공식 배상도 하지 않은 일본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로 해결된 사안이라는 기존 주장을 고수하며 판결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항소조차 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대로 판결 내용이 확정되면 집행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는 더 큰 외교적 갈등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역사적·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 전환 없이는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