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맨 오른쪽)이 16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손병환 농협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윤종규 케이비(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하나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15일 김정태 현 회장을 포함한 4명의 차기 회장 후보군을 발표했다. 현직 프리미엄과 경쟁 후보들의 면면을 고려할 때 김 회장의 연임이 유력하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김 회장이 네번째 연임하면 역대 금융그룹 최고경영자 가운데 최장수가 된다. 지난해 4대 금융그룹 중 케이비·신한·우리 회장들도 모두 연임에 성공했다. 4대 금융지주 회장이 모두 연임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지주회장 종신제’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그룹 수장들이 경영 성과를 바탕으로 연임에 도전할 수 있고, 장기 재임이 미래 투자와 경영에 긍정적이라는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사회나 주주의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현직 회장의 ‘셀프 연임’이 고착화하는 현실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금융그룹들은 독립적인 회추위와 경영승계 프로그램 등 투명한 절차를 통해 회장 선출이 이뤄진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현직 회장이 이사회를 자기 사람들로 꾸리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피할 수 없다. 인사권을 활용해 경쟁 후보를 미리 낙마시킨 뒤 대안부재론을 조성하는 행태 또한 여전하다. 노동자 대표의 회추위 참여 등 이사회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실질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회장들이 공정한 후임승계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다면, 법으로 임기를 제한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일부에선 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신관치’라고 하는데, 현실은 거꾸로다. 힘이 세진 회장들이 금융사고와 채용비리에 대한 당국의 제재에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예전에는 없던 일이다. 이사회가 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최고경영자에게 책임을 무겁게 물어도 모자랄 판에, 최종 법적 판단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부 징계를 회피한다. 징계가 확정되면 연임은커녕 금융권 취업도 불가능한데도 회장 추천을 밀어붙이기까지 한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행사하는 현행 시스템 또한 개선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금융지주의 내부통제 실태를 진단한 결과, 금융지주의 리스크 관리 소홀로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지주 회장들은 책임을 자회사 경영진에 떠넘긴 채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금융지주의 책임을 더 강화하고 권한을 합리화하면 무리한 연임 시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